탄탄한 국가재정은 1997년 외환위기 극복의 일등공신이었다. 당시 한국 경제는 경상수지 적자 누적과 외국 자본 이탈로 달러가 부족해 국가부도 위기에 몰렸지만 국가재정만큼은 튼튼했다. 정부는 모자란 달러를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빌려 급한 불을 끄고 재정을 풀어 위기 극복을 위한 경기 부양과 사회안전망 정비에 나설 수 있었다. 연간 7∼8% 경제성장을 하며 나라 곳간을 든든히 해놓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를 거치는 15년간 국가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11.9%에서 33.3%로 상승했다. 아직 선진국보다는 사정이 낫지만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로 복지수요가 늘고 저(低)성장에 따라 세입이 줄어드는 장래를 생각하면 앞길이 밝지 않다. 조세연구원은 저출산과 고령화만으로 2050년이면 국가부채 비율이 재정위기에 처한 남유럽에 육박하는 128%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했다. 361조 원에 이르는 공기업 부채는 물론이고 선진국보다 과다한 가계와 기업 부채가 악화해 국가부채로 옮아올 가능성도 대비해야 한다. 수백조 원에 이를 통일비용도 막대한 부담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5년간 복지공약 실행을 위해 134조 원을 쏟아 붓겠다고 약속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아직 구체적인 숫자를 내놓지 않았지만 총선 공약만 해도 174조 원에 이른다. 후보들은 예산 절감 등 세출 구조조정과 세원(稅源) 확대 등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했으나 올해도 선심성 ‘쪽지예산’ 같은 구태를 드러내는 국회를 보면 믿음이 가지 않는다. 제1 야당과 집권 여당 대표를 지낸 박 후보나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문 후보는 외환위기 이후 급증한 국가부채에 대해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