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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규의 ‘직필직론’]대통령이 되고 싶으면 ‘소통 총사령관’이 되라

입력 | 2012-11-15 03:00:00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소통 총사령관(Communicator-in-Chief)’의 승리였다. 2008년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이 되면서 ‘소통 총사령관’이란 직함을 얻었던 버락 오바마는 역시 소통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4년 전 47세의 오바마가 소셜미디어를 십분 활용하면서 대통령이 되자 미국 언론과 학계는 대통령의 헌법상 지위인 ‘국군 총사령관(Commander-in-chief)’에 빗대 그를 ‘소통 총사령관’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존 F 케네디가 1961년 대통령이 된 데에 텔레비전이 있었다면 오바마에겐 소셜미디어가 있었다. 트위터, 페이스북, 마이 스페이스, 유튜브, e메일, 블로그에 비디오게임까지 모든 뉴미디어를 맘껏 활용했다.

오바마 압승 원인은 ‘소통의 진정성’

오바마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비디오게임에까지 광고를 했다. 2008년 트위터의 전체 계정이 350만 개에 지나지 않았을 때 그의 팔로어는 11만8000명이었다. 그는 선거일 아침 “우리는 역사를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은 (이 글을 보고 있는) 그대 때문에 일어났다”는 감성 넘치는 글을 올릴 정도로 유권자들과 깊은 트위터 교감을 했다.

소셜미디어는 선거만을 위한 도구가 아니었다. 대통령 오바마는 재임 기간 줄곧 소셜미디어에서 육성으로 국민과 소통했다. 이번에도 재선이 확정되자마자 언론보다 먼저 트위터에 감사 문구를 올렸다. 2012년 11월 오바마의 트위터 팔로어는 2300만 여명. 밋 롬니보다 10배 이상 많은 수로 세계 정치인 가운데 1위이다.

트위터가 발표한 팔로어가 많은 100명 가운데 미국의 인기 여가수 레이디 가가가 1위, 캐나다 출신의 아이돌 가수 저스틴 비버가 2위이며 오바마는 5위이다. 여가수 브리타니 스피어스가 6위, 토크쇼 사회자 오프라 윈프리가 12위이니 오바마가 소셜미디어를 정치에 얼마나 잘 활용하는지, 그래서 얼마나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지 짐작할 만하다.

그러나 미국인들이 프랭클린 루스벨트, 케네디, 로널드 레이건 등 ‘위대한 커뮤니케이터’라 꼽히는 대통령의 반열에 오바마를 올리면서도 유난히 그를 ‘소통 총사령관’이라고 따로 부르는 데에는 단지 뉴미디어 기술 활용에 뛰어나다는 이유 말고 다른 이유가 있다.

현대 민주주의 정치의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는 ‘말(言)’이다. 정치란 말의 게임이다. 부패하거나 무능한 정치인은 있어도 말 없는 정치인은 상상하기 어렵다. 정치 게임은 말의 소통을 통해 이뤄진다. 지도력과 소통은 함께 가는 것이다. 위대한 리더십은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설득해 행동에 나서도록 하는 소통의 능력이다.

오바마는 말의 힘을 꿰뚫고 있다. 선거운동 기간 내내 자신의 캠프 내 누구보다 뛰어난 대변인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말만 잘하는 정치인이 아니었다. 2008년과 2012년 대선을 전후해 미국 언론들은 오바마 소통의 특장(特長)으로 ‘공감’을 꼽았다.

오바마는 연설 내용과 태도에서 컬럼비아대와 하버드대 법대를 졸업한 아이비리그 이미지를 벗어던지면서 젊은이와 서민들이 자신과 함께 호흡하도록 노력했다. 그는 ‘거리의 투사’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언제든지, 서슴없이 국민 앞에서 나서면서도 한껏 몸을 낮추고 그들의 얘기를 들었다. 국민은 모든 질문에 막힘없이 답하고 문제 해결에 능한 대통령보다 자신들과 어려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대통령을 바란다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유권자들과 트위터로 ‘감성 교감’

워싱턴포스트가 발행하는 잡지 ‘슬레이트’는 이번 대선 결과를 분석하면서 “결국 롬니가 옳았다. 모든 것은 경제였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경제 문제를 푸는 데 신경 쓰는 그 이상의 사람을 원했다. 다시 말해 자신들에게 관심을 갖는 후보를 원했다. 그것은 ‘공감’이었다. 어느 후보가 더 당신들에게 신경을 쓰느냐고 물었을 때 투표자들의 80% 이상이 오바마라고 대답했다”라고 썼다. 이번 선거의 가장 중요한 승부처로 꼽혔던 오하이오 주는 투표자의 84%가 그렇게 답했다. 오바마 승리의 요인은 정책도 미래 비전도 아니었다. 오히려 투표자는 55% 대 43%로 롬니의 비전을 더 지지했다. 묘언(妙言)도, 기언(奇言)도, 박학다식함도 아닌 ‘소통의 진정성’이 오바마 압승의 요체였다. 진지하고 성실한 태도로 국민이 공감하도록 만드는 기술과 능력이 이 젊은 흑인을 두 번이나 대통령으로 만든 것이다.

미국이 세워졌을 때 흑인들은 노예였으며 투표권도 없었다. 1954년 연방대법원이 공립학교에서 흑백 분리 수업을 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하자 백인들은 “흑인들과 한 교실에서 함께 공부하는 것보다 돼지와 한 이불 속에서 잠을 자는 게 낫겠다”라며 반발했다. 미국 사회의 흑인에 대한 지독한 편견은 여전하다. 흑인 대통령이라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던 일이 미국에서 일어난 것은 단지 시대의 변화만이 아니었다. 말의 기교를 넘어선 진정한 소통을 통해 국민의 공감을 얻어 낸 오바마 개인의 힘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이제 눈을 한국의 대통령 선거로 돌려 보자. 세 유력 후보 가운데 누가 진정성 있는 소통을 하고 있는가?

트위터 팔로어의 경우 문재인 후보가 28만 명, 박근혜 후보가 23만 명, 안철수 후보는 8만 명이라고 한다. 일단 수적으로 미미하지만 세 후보의 트윗 중 화제가 된 것이 없는 것으로 보면 모두 뉴미디어 기술로 소통에 성공하고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하고싶은 말만 하는 한국 대선후보

그렇다고 국민의 공감을 얻는 열린 소통을 하는 후보도 없는 것 같다. 세 후보 모두 행사장이나 기자회견 등에서 공약 발표와 같이 자신의 말만 일방으로 할 뿐이다. 기자들의 질문도 거의 받지 않는다. 후보들 간 토론도 없다. 도무지 어느 후보가 도전적이고 긴장된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으면서 할 말을 하는지, 누가 명확하고 설득력 있는 소통 능력으로 유권자들을 감화시킬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다.

미국의 교훈이 아니더라도 소통은 선거 운동의 심장이다.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지금 당장 소통 총사령관이 되라고 세 대선 후보에게 권하고 싶다.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