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버전스 제품이 뜬다
전단 가격 보고 왔는데… 또 할인 불황이 깊어지면서 싼 물건을 찾아 발품을 파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이마트가 지난달 25일부터 일주일간 벌인 돼지고기 할인행사에서는 평소 두 달 치 판매량에 해당하는 460t이 팔렸다. 이마트 제공
불황이 깊어지면서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소비자들의 이런 노력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이마트 전국 점포에서 오후 8시 이후 매출이 하루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올해 들어 34.5%로 지난해의 26.4%에 비해 크게 높아졌다.
○ 가격 거품 뺀 상품 인기
롯데마트가 지난달 18일부터 판매하고 있는 자사브랜드(PB) 제품인 ‘스위스 밀리터리 등산배낭’(28L 용량)은 디버전스 상품의 인기를 보여주는 한 예다. 이 배낭은 불필요한 주머니 수를 줄여 디자인을 단순화하고 배낭 아래쪽 주머니에 방수커버를 일체형으로 붙여 원가를 낮췄다. 값은 일반 브랜드 배낭에 비해 40%가량 싼 2만4800원. 이 배낭은 11일까지 25일간 약 4000개가 팔려나갔다. 롯데마트의 한 달 평균 전체 등산배낭 판매량 3000개를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그릴 건조 등 부가 기능을 모두 빼버리고 점화 기능만 남긴 이마트의 저가형 가스레인지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달 30일 기존 브랜드 제품에 비해 절반 수준인 4만9000원에 선보인 이 가스레인지는 판매를 시작한 직후부터 가스레인지 제품 가운데 판매량 1위를 달리고 있다.
드럼세탁기에 밀려 한동안 퇴물 취급을 당했던 ‘통돌이’ 세탁기도 최근 인기가 높아졌다. 같은 용량의 드럼세탁기에 비해 최대 40만 원가량 싼 가격 덕분에 소비자들로부터 다시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최근 들어서는 통돌이 세탁기 판매량이 드럼 세탁기의 두 배 수준”이라며 “매장에서도 눈에 잘 띄는 위치에 통돌이 세탁기를 진열하고 있다”고 말했다.
○ “싼 것만 찾는 소비자를 잡아라”
대형마트업계의 생필품 할인판매 행사 때마다 매장 안팎에 사람들이 줄을 서는 것도 불황이 낳은 풍경이다.
브랜드 제품에 비해 가격이 싼 PB제품을 찾는 소비자도 늘고 있다. 롯데마트에서는 올해 들어 냉동만두 식빵 우유 잼 등 식음료는 물론이고 빨래건조대, 고무장갑, 복사용지, 애견용 껌 등 다양한 상품군에서 PB제품이 기존 브랜드 제품을 제치고 매출 1위를 기록 중이다.
1000∼5000원대 저가 생활용품을 주로 판매하는 다이소는 불황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경우다. 상대적으로 불황을 덜 타는 대형마트업계조차 올 들어 매출이 2∼4% 줄었지만 다이소는 9월 말까지 전년 동기 대비 30%의 매출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매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품목이 종이컵 건전지 물티슈 복사용지 등 상대적으로 경기를 덜 타는 품목인 데다 값싼 물건을 파는 곳이라는 인식이 퍼진 덕분이다.
소비자가 조금이라도 더 싼 물건을 찾아 몰리다 보니 유통업체들은 가격경쟁에 목숨을 거는 분위기다. 주목을 받기 위해 김장배추 방한용품 등 매년 진행해온 계절상품 할인판매 행사 시점을 예년보다 짧게는 2주에서 길게는 한 달씩 앞당기는 것은 기본이다. 광고전단을 배포한 이후에 경쟁업체 가격이 더 낮게 책정된 것을 확인하고 추가로 가격을 내리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