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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송평인]선거와 영화

입력 | 2012-11-06 03:00:00


송평인 논설위원

미국에서 2004년 대선을 앞두고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화씨 9/11’이 나왔다.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이 시작한 이라크전쟁을 신랄히 비판한 이 영화는 거짓과 왜곡이 많다는 지적도 받았지만 큰 인기를 얻어 다큐멘터리 영화 사상 최고 수익을 올리고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까지 받았다. 올해 대선을 앞두고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재집권을 막기 위해 보수 진영에서 ‘2016년: 오바마의 미국’을 만들었다. 역시 꽤 인기를 얻어 다큐멘터리 영화 부문 역대 4위를 기록했다.

▷국내에서는 2007년 대선을 5개월 앞두고 1980년 5·18 광주를 그린 영화 ‘화려한 휴가’가 나왔다. 당시 열린우리당 대선 예비주자들이 줄줄이 봤다. 나중에 여권 대선후보가 된 정동영 씨도 이 영화를 보고 눈물을 펑펑 흘렸다는 보도가 있었다. ‘화려한 휴가’는 전두환 정권을 겨냥한 것이어서 당시 한나라당의 이명박 박근혜 대선 예비주자를 직접 겨냥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대선 구도를 ‘민주 대 반민주’로 몰아가려던 열린우리당의 입맛에 딱 맞아떨어졌다.

▷올 대선을 코앞에 둔 이달 하순 ‘남영동 1985’와 ‘26년’이 개봉된다.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인 ‘남영동 1985’는 지금은 고인이 된 김근태 전 의원에 대한 전두환 정권의 고문 사건을 다뤘다. 인기 여배우 한혜진이 출연하는 ‘26년’은 1980년 광주 가해자에 대한 피해자의 복수를 그렸다. 박정희 정권을 연상시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에게 불리할 수 있다. 박 후보에게 유리한 영화도 제작되고 있다. 한은정 감우성이 주연한 ‘퍼스트레이디-그녀에게’로 육영수 여사를 다뤘다. 제작사 측 목표대로 대선 전에 개봉될지는 확실하지 않다.

▷무어 감독은 ‘화씨 9/11’을 만든 후 “부시가 대통령 직에서 제거되는 것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남영동 1985’를 만든 정지영 감독도 그 노골성을 본뜬 듯이 “이 영화가 올 대선에 영향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화씨 9/11’에도 불구하고 부시 대통령은 민주당 존 케리 후보를 눌렀다. ‘화려한 휴가’가 상영된 뒤였음에도 이명박 후보는 정동영 후보를 거의 더블스코어 차이로 이겼다. 이런 영화가 같은 편이 뭉치는 데는 몰라도 표 확장에는 별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일까.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