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풍자 소설 ‘총통각하’ 쓴 배명훈, 작품 속 총통 앞으로 불려가다
공상과학 정치풍자소설 ‘총통각하’를 펴낸 소설가 배명훈이 지난달 29일 청와대 앞을 찾았다. 그는 “청와대 앞은 처음이지만 인왕산에 여러 번 올라 청와대를 내려다보며 소설을 구상했다”고 설명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총통=반갑네. 총통 관저는 처음이지. 어떤가.
작가=TV에서 본 것과 다를 바 없네요. 관저 앞 광장에 외국인 관광객만 가득하네요. 한국인은 시위 때나 오는 것 같네요.
총통=허헛, 말에 뼈가 있구먼. 공상과학소설 작가라고 들었는데, 웬 정치 얘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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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년 10월 중순에 출간된 ‘총통각하’는 큰 논란을 빚었다. 200년 이상 공화국을 통치한 총통을 독재자로 지칭하거나, 심지어 총통이 고심 끝에 내린 인사권을 ‘낙하산 인사’라고 몰아세웠다. 국가도서등급판정위원회는 이를 유해간행물로 판단하고 즉시 배포금지 및 수거 결정을 내렸지만, 여론의 반발에 밀려 ‘청소년유해간행물’로 수위를 낮춰 판매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마저도 총통은 탐탁지 않았다.
총통=작가가 말이야, 작품에서 정치적 의사표현을 직접적으로 하면 되나.
작가=작가가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규율은 누가 정했나요. 작가들은 자연의 아름다움만 노래해야 하나요.
총통=어허, 이 사람이. 그래 딱 까놓고, 자네는 내가 싫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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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총통 앞에서? 총통은 ‘당돌하다’고 생각했지만, 호기심도 들었다. ‘얘는 내가 무섭지 않은 겨?’
작가=책 내면서 주위에서 걱정도 하고, A일보 같은 곳은 인터뷰조차 안 할 거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총통=기백이 좋구먼. 좋아. 이번에 내 대선 캠프에 들어오는 것은 어떤가.
작가=싫습니다.
총통=따로 지지하는 사람이 있는 건가.
작가=정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대선에서는 후보 인물평만 가득한데 이보다는 후보가 당선 후 제대로 정책을 펼 수 있게 돕는 건전한 지지 세력의 존재가 중요합니다. 이 부분에서 세 후보 모두 확신을 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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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꼭 총통을 모델로 했다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정치현상은 보편적인 것이어서 10년 뒤에 읽으면 또 딴 사람이 보이고, 아마 외국에 갖다 놓으면 그 나라의 정치인을 떠올리며 낄낄댈 겁니다.
총통=정치를 공부했다(서울대 외교학 석사)더니 정치적 언변이 뛰어나구먼. 내가 재선되면 어떻게 할 건가.
작가=글쎄요. 아마 다시 왕성한 창작열이 솟구치지 않을까요.
총통=쿨 하구먼. 나는 총통이 되고, 자네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하하. 하하하.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