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곡절 많은 가정에 3년째 무료 사진봉사 김진철 씨
어려운 가족 수백 명의 사진을 무료로 찍어준 ‘천사 사진사’ 김진철 씨는 정작 본인이 피사체가 되는 것에는 익숙지 않았다. 25일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모다스튜디오에서 김 씨가 사진을 찍을 때처럼 카메라와 ‘웃음 유발용’ 딸랑이를 들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그녀는 2007년 겨울 아이들에게까지 주먹을 휘두르는 남편을 피해 세 남매를 데리고 집을 나왔다. 겨울바람을 피해 쉼터에 몸을 맡겼지만 남편은 부엌칼을 들고 찾아왔다. 친구, 친정과도 연락을 끊고 서울의 한 단칸방으로 숨었다.
친구를 사귈 만하면 도망치듯 학교를 옮겨야 했던 아이들은 엇나갔다. 열아홉 큰딸은 학교를 중퇴하고 아르바이트를 찾아 나섰다. 열여섯 큰아들은 집 밖으로는 한 걸음도 나오지 않는 은둔형 외톨이가 됐다. 열세 살 둘째 딸은 아빠가 꿈에 나오면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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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가 찾아왔다. 둘째 딸을 후원하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 가족사진을 무료로 찍어주는 사진사를 소개해 준 것. “서로 친한 척 좀 하세요. 안 친한 거 티 나요.” 사진사 김진철 씨(39)가 장난스럽게 말하자 아이들 표정이 환해졌다. 이들의 눈부신 순간이 카메라에 담겼다. A 씨는 “성호를 보고 싶을 때마다 들여다볼 가족사진이 생겼다”며 뚝뚝 눈물을 흘렸다.
김옥연 할머니(오른쪽)가 필리핀에서 온 며느리, 아들, 손주와 함께 25일 생애 첫 가족사진을 찍었다. 김진철 씨 제공
‘거실에 가족사진 한 장 걸었으면….’ 아들 이장환 씨(51)에게 차마 말하지 못한 김 할머니의 소원이었다.
그랬던 할머니의 얼굴에 요즘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2009년 새 식구가 된 필리핀 며느리가 작년과 올해 연이어 손녀와 손자를 안겨 줬기 때문이다. 3년 만에 가족이 5명으로 늘어났다. 김 할머니는 “생애 가장 행복한 나날을 사진으로 남겨 두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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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사진 액자는 하나에 30만∼50만 원이지만 이들에겐 돈을 받지 않는다. 일반 고객의 예약이 두 달 치씩 밀려 있을 정도로 바쁘지만 봉사를 거른 적도 없다. 높은 가격뿐 아니라 세상에 모습을 보이기 싫어 가족사진을 피했던 이들에게 다시 세상에 나올 용기를 주는 게 기뻐서다. “세상 모든 가족이 집에 걸린 가족사진을 보며 힘냈으면 좋겠다”는 김 씨는 다음엔 어떤 가족에게 행복을 전해 줄지 벌써 설렌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