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현 경제부 차장
정치, 경제적인 빚으로부터 자유로운 ‘무(無)차입 정치’ 선언처럼 들린다. 때탄 정치와 고위 공직자의 회전문 인사 등에 신물을 느껴온 국민들이 듣고 싶어 하는 얘기를 콕 집어내 다른 후보와의 차이점을 부각한 용의주도한 발언이기도 하다.
실제로 빚에 관한 한 안 후보만큼 자유로울 수 있는 후보는 없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상대적으로 정치권에 오래 몸담은 만큼 주변에 이해관계자가 많을 수밖에 없고, 그만큼 갚아야 할 정치적인 빚도 클 것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안 후보는 상대적으로 빚에서 자유롭다. 성공한 기업인으로 수천억 원 자산을 가진 그라면 정당이나 주위의 금전적 지원 없이 선거전을 치를 수 있다. 심지어 결혼 후 집을 장만할 때도 양가 부모가 도와줬다니 일반 봉급생활자들이 운명처럼 짊어지는 주택담보대출 빚 부담도 크게 져본 적이 없을 것 같다.
안 후보는 채무가 없을 뿐 아니라 적지 않은 ‘사회적 채권’까지 깔아 놨다. 그가 개발한 바이러스 백신을 무료로 써온 PC 이용자들 사이에서 “안 후보를 찍어 고마움을 표시하자”는 얘기가 나온다. 박 후보는 경제기적을 이뤄낸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존경이란 채권을, 문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민주화 세력에 대한 386세대의 부채의식을 각각 계승했지만 젊은 세대가 안 후보에게 갖는 부채의식도 이에 못지않다.
개인 유저들에게 프로그램을 무료 배포해 시장을 장악한 뒤 기업, 공공기관에 판매해 수익을 올리는 안랩의 영업 방식이 한국 PC 보안 산업의 성장을 막았다는 관련 업계의 비판도 안 후보의 열성 팬들 앞에선 괜한 발목잡기로 비친다.
하지만 빚이 없다는 게 대선후보의 신뢰도나 신용도를 나타내는 척도가 될 수 없다는 점은 반드시 짚고 가야겠다. 금융거래에서는 돈을 빌려 꼬박꼬박 원리금을 갚거나, 신용카드로 물건을 산 뒤 연체 없이 대금을 지불하는 게 신용도를 높이는 방법이다. 빚을 진 적 없는 사람은 빚을 갚는 과정을 평가받은 적이 없어 신용도가 오히려 낮게 나온다. 대선까지 남은 석 달간 몰려드는 인물들과 막대한 지출로 인해 안 후보의 정치, 경제적 채무는 단기간에 급증할 것이다. 큰 빚을 져본 적 없는 안 후보로서는 평생 처음 겪는 도전이다.
박중현 경제부 차장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