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 무늬는 사랑이다”
구사마 야요이가 2009년 8월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일본 이동통신사 KDDI의 iida 휴대전화를 들고 있다. 사진 출처 iida 홈페이지
83세의 현직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현대 미술의 거장 구사마 야요이(草間彌生) 하면 바로 떠오르는 것이 일명 ‘땡땡이’무늬로 널리 알려진 물방울무늬(polka-dot)다.
물방울무늬는 그의 예술적 시발점이자 종착점이며 예술철학을 모두 담은 응집체이기도 하다. 7월 12일부터 이달 30일까지 2달여 동안 미국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서 회고전을 갖고 있는 그를 두고 뉴욕타임스 AP통신 등 미국 언론들은 2012년을 ‘구사마의 해’로 부른다.
구사마는 자신의 예술이 ‘환영(幻影)’으로부터 시작됐음을 고백한다. 열 살 때 빨간 꽃무늬 식탁보를 본 후 그 잔상이 둥근 물방울무늬로 바뀌고 자신의 몸에까지 붙는 착각을 했다는 것이다. 원치 않는 환영의 고통, 바람둥이 아버지의 가출 그리고 남편의 가출과 딸의 정신질환에 고통을 받은 어머니로부터의 폭행…. 인생의 고통을 너무 어린 시절부터 맛본 구사마는 고통에 무릎 꿇고 삶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었지만 정신병을 예술적 감성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을 하게 된다. 그에게는 환영의 공포를 이겨내는 치료제도, 현실의 고통을 상쇄하는 진통제도 ‘예술’이었다.
구사마는 어린 시절 환영에 시달린 후 그것을 수채화 유화 파스텔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도화지에 표현하는 것을 시도한다. 교토시립미술공예학교에서 전통 일본화를 공부한 뒤 보수적인 일본 미술계에 염증을 느끼고 1957년 28세의 나이로 홀로 무작정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구사마는 한 인터뷰에서 “1950년대 보수적인 일본 사회에서 어떻게 여자 혼자서 미국으로 갈 생각을 했느냐”는 질문에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된다는 식의 사고를 벗어나야 한다”고 답했다. 도전적인 구사마의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낸 말이었다. 구사마는 작품을 할 때도 일단 붓을 잡고 그려나간다고 한다.
그가 미국에 갔을 당시 뉴욕 예술계의 조류는 ‘액션 페인팅’이었다. 그러나 그는 꿋꿋이 자신의 물방울 작업을 계속 이어나간다. 사람의 몸을 도화지 삼아 땡땡이를 그리고 심지어는 말의 몸에도 땡땡이를 그렸다. 구사마는 이 시기에 기존 물방울 그림에서 누드 퍼포먼스 조각 콜라주까지 작품의 영역을 무한대로 확장시키는 데 성공했고 반전운동, 동성애자 권리옹호 등 인권문제에까지 관심을 가지게 된다. 현대예술의 거장인 앤디 워홀, 조지프 코넬, 조지아 오키프 등도 구사마의 독창적인 작품 스타일에 감탄하고 그와 교류를 쌓기 시작했다. 미국 언론에서도 동양에서 날아온 그의 ‘사이키델릭’한 물방울에 관심을 갖고 집중 조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1977년부터 도쿄의 한 정신병원에 머물면서 치료와 동시에 작품 활동을 계속하기 위해 병원 옆에 ‘구사마 스튜디오’를 만들고 매일같이 혼신의 힘을 다해 그림을 그렸다. 그의 이런 치료와 작업의 병행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구사마는 시와 소설까지 내는 등 전방위 예술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구사마 야요이의 물방울무늬로 꾸며진 미국 뉴욕 5번가의 루이뷔통 매장 전경. 사진 출처 어레스티드모션닷컴(arrestedmotion.com)
루이뷔통은 지난해 6월 영국 런던 테이트 모던 회고전과 이번 휘트니 미술관 회고전도 지원했다.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루이뷔통 매장의 쇼윈도는 구사마의 ‘우주의 시작’이라는 테마의 작품들로 꾸며졌다. 그가 83세 노령에도 불구하고 미 언론들이 2012년을 ‘구사마의 해’라고 부르는 이유다.
구사마는 이번 루이뷔통과의 협업에 대해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나의 물방울은 사랑과 인간 생명의 소중함을 표현한 것이다. 현재 세계 여러 곳에서 혼란이 일어나고 있지만 나의 이런 메시지가 전 세계에 퍼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7월 30일 자신이 태어난 일본 나가노 현 마쓰모토 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자신의 개인전 ‘영원의 영원의 영원(永遠の永遠の永遠)’전에 참석한 구사마는 휠체어를 타고 자신이 직접 지은 시를 읽으며 멜로디를 붙여 노래하기도 해 관람객들의 환호를 자아냈다. 구사마는 이 자리에서 말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필사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다만 나이를 이렇게 먹어버린 것이 유감이지만(웃음)…. 저는 오랫동안 작품을 하고 싶습니다.”
자신의 삶을 평생 괴롭혔던 정신질환을 예술의 씨앗으로 삼아 이제는 전 인류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려 하는 노장의 의지가 열매 맺는 순간이었다.
백연상 기자 bae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