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3년 수행 마치고 ‘환속’
3년간의 산중 수행을 마치고 속세로 돌아온 서길수 전 서경대 경제학과 교수. 자연건강법을 실천해 몸무게는 20kg 줄었으나 표정은 가볍고 맑아보였다. 그는 자신과 남을 이롭게 하는 ‘자리이타(自利利他)’를 여생의 목표로 삼고 이를 위해 책을 쓰겠다고 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퇴임 전까지 그는 중국을 답사하며 고구려 산성 130개를 발견했고 1994년 사단법인 고구려연구회(현 고구려발해학회)를 설립해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는 논리를 개발하는 데 앞장서왔다. 그러다 돌연 지인 700여 명에게 “3년간 ‘수학여행’을 다녀오겠다”는 e메일만 남기고 전화 인터넷 TV 라디오 신문을 일절 끊은 채 산속에서 두문불출 수행과 공부에 전념해왔다.
17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연구실에서 만난 서 전 교수는 핼쑥해져 옛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그는 천식과 알레르기비염으로 약을 달고 살다시피 했으나 올해 2월부터 약을 끊고 자연건강법을 실천했다고 한다. 그 결과 몸무게가 20kg 줄어 53kg이 됐다. “익힌 음식은 전혀 먹지 않고 유기농 매갈이쌀(현미) 가루와 날 남새(채소), 찬물만 먹습니다. 단식도 네 차례 했고요. 백골에 가죽만 입혀놓은 꼴이지만 쓸데없는 것을 벗어버리니 정신이 맑아졌지요.”
1992년부터 8년간 아침마다 2시간씩 선(禪) 수행을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산에서 매일 6∼8시간 정토선(淨土禪·염불선)을 수행했다. 오전 2시 반에 기상해 오후 9시에 잠들기까지 수행과 경전 번역, 집필, 공부에 몰두했다. “내 생애 이렇게 열심히 공부해본 적이 없었어요.” 24시간 염불을 들었는데 산책 나갈 땐 MP3플레이어의 이어폰을 꽂고 들었다.
“3년간 수행해보니 내 근기(根氣)로는 이승에서 득도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죠.” 그 대신 남은 세월은 ‘자리이타(自利利他)’, 즉 자신은 물론이고 남을 이롭게 하는 데 쓰기로 했다. 그것이 대승에서 말하는 보살행위라는 것. “남의 똥 닦아주며 보살해도 되겠지만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 즉 책을 써서 (지혜와 지식을) 나누는 데 여생을 바치기로 했습니다.”
뱀에 물렸을 때, 벌에 쏘였을 때, 그리고 치질수술을 받으러 병원에 갔던 세 차례를 제외하고 온전히 산속에만 있었다는 그는 “치질수술을 안 하면 좌선 수행을 못하겠더라”며 웃었다. 세상 돌아가는 소식은 한 달에 한 번 공과금 내러 산 밑으로 내려가는 부인이 사다 준 신문을 읽거나 스님들한테 이야기를 들어 알았다.
산에서 그는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으로 불리는 정토종의 경전 ‘무량수경(無量壽經)’ ‘관(觀)무량수경’ ‘아미타경(阿彌陀經)’을 한국어로 번역했다. 이를 위해 산스크리트어를 독학했다. 정토선 수행 중 극락에 다녀왔다고 해서 논란을 일으킨 중국의 관정 스님(1924∼2007)에 대한 책도 쓰고 있다.
그러나 자신은 중국의 고구려사 편입 시도에 대한 학술적 대응에 더이상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나의 고구려 연구는 끝났어요. 학문도 세대의 순환이 있어야 하는 법이니 이제 후배들의 몫으로 넘기려 합니다.”
그는 정토삼부경 번역 원고를 검토하기 위해 18일 아침 다시 산으로 올라갔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