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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각 경찰’ CSI견, 1km 밖 범인 신발도 찾아내

입력 | 2012-09-19 03:00:00

■ 경찰 체취증거견의 세계




7일 경북 영덕군의 한 노래방에서 이모 씨(61)가 50대 여성을 납치해 차에 태우고 사라졌다. 일주일 만인 14일, 이 씨 차 안에서 피해 여성이 탈진 상태로 발견됐지만 이 씨는 도망가고 없었다. 경찰은 셰퍼드 세 마리를 차에 들여보내 운전석과 운전대, 범인 것으로 보이는 남성용 잠바의 냄새를 꼼꼼히 맡게 했다.

차에서 범인 냄새를 ‘흡입’하고 나온 개들은 차 뒤편의 야산으로 향했다. 이 야산은 경찰관들이 이미 대대적 수색을 벌였지만 흔적을 찾을 수 없어 포기했던 곳이다. 개들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이곳저곳을 휘젓고 다녔다. 얼마 뒤 숲 속에서 셰퍼드가 ‘컹컹!’ 하며 짖는 소리가 들렸다. 임도(林道·숲 사이로 나 있는 길)에서 40∼50m 떨어진 산기슭에 ‘바스코’란 이름의 개가 앞발을 모은 채 앉아 있었다. 그 옆에 이 씨의 시신이 있었다.

대규모 경찰력으로도 찾아내지 못한 범인을 발견한 이 개들은 ‘체취증거견(Human Scent Evidence Dog)’이다. 한 번 맡은 사람 냄새를 기억해 냄새로 범인을 추적하는 일이 임무다. 국내에는 셰퍼드(독일산)와 말리누아(벨기에산) 각각 3마리, 레트리버(영국산) 2마리 등 총 8마리가 이 임무를 맡고 있다.

현재 증거견들은 17일 경찰서 유치장 배식구를 통해 탈주한 전과 25범 강도 피의자 최모 씨(50)를 쫓는 일에 투입돼 그가 달아난 곳으로 보이는 야산을 수색하고 있다. 경남 통영 아름이 사건, 제주 올레길 살인 사건, 울산 자매 살인 사건 때도 체취증거견이 범인과 피해자의 냄새를 추적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런 대형 사건이 나면 전국 경찰특공대에 나뉘어 있던 체취증거견들이 기동타격대 출동하듯 사건 현장에 즉각 급파된다”고 말했다.

체취증거견은 잠깐 스치듯 맡은 냄새도 오래 기억해 제3의 장소에서 해당 냄새를 정확히 식별한다. 또 범인이 손으로 만진 물건에서 맡은 냄새를 응용해 신발 등 신체의 다른 부위가 닿은 물품까지 골라낸다. 한마디로 냄새로 범인을 잡는 ‘CSI(과학수사)견’이다.

경찰에는 마약이나 폭발물을 탐지하는 수색견 97마리가 있지만 이 중 체취증거견 8마리는 냄새 식별 능력 강화를 위해 특화된 훈련을 받는다. 특정인의 소지품 냄새를 맡게 한 뒤 그의 다른 소지품을 숨기고 찾게 하는 훈련을 반복해 체취를 분간하는 능력을 키운다. 숙달된 개들은 땀이나 침, 눈물 등 타액으로도 특정인의 고유한 냄새를 구분하는 기술을 습득한다.

한국은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일본 경찰은 체취증거견 1469마리를 운용하고 있다. 지난해 이시오카(石岡) 시에서는 강도범의 지갑 냄새를 맡은 체취증거견이 1km 떨어져 있는 주택에서 범인 신발을 찾아내 방에서 잠을 자던 범인을 붙잡았다. 일본 등 선진국에선 체취증거견의 전문성을 인정해 이들의 ‘동물적 판단’을 유전자(DNA)나 지문처럼 법적 증거로 인정한다.

한국 경찰도 이 견공들을 육군 군견훈련소와 미국 국토안보부 특수견 훈련소에 전지훈련을 보내는 등 2년 전부터 집중 육성하고 있다. 2015년 경찰견 종합훈련센터가 설립되면 체취증거견을 대거 양성해 수사에 활용할 계획이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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