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흥제과제빵기계 김대인 대표
김대인 대표는 10일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이 마련한 ‘우수 숙련기술인 국민스타’ 오찬에 참석했다가 오랜만에 청계천을 찾았다. 그는 멍키스패너를 하나 집어 들더니 “원숭이처럼 재주를 부리는 공구”라고 했다. 서영수 전문 기자 kuki@donga.com
‘나는 공돌이다!’
㈜대흥제과제빵기계의 김대인 대표(57)는 지난달 에세이집을 내면서 머리말에 이런 소제목을 달았다. 열다섯 어린 나이에 냉동설비 공장에 들어가 40년이 지난 오늘도 공장 일을 하고 사는 ‘공돌이’라면서….
초등학교 저학년 때만 해도 과외교사를 둘 정도로 여유 있는 집안이었으나 부친의 사업 실패로 중학교 2학년 1학기만 마치고 냉동설비공장에 들어간 소년공(少年工) 김대인. 그러나 그는 ‘내가 우리 집 경제 가장(家長)이다’라는 절박감 하나로 하루 18시간 노동을 버텨냈다. 아니, 그냥 버텨내기만 했다면 오늘 ‘대한민국 국민스타 명장(名匠)’ 김대인은 없었을 것이다.
그 무렵 “열두 시에 만나요∼부라보콘!”이라는 CM송과 함께 국내 빙과산업이 태동하기 시작했다. 냉동공장에 주문이 밀려들면서 그도 사업에 눈을 뜨게 된다. 기술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했다. 냉동기술자가 아니라 ‘냉동마술사’라고 불렸을 정도였으니 뭐 잘못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실패, 또 실패. 술에 취해 동네 청년들과 싸우고 오토바이 폭주족이 돼 떠돌았다. 10년간 가족 위해 희생한 대가를 내놓으라고 부모 형제를 닦달했다. 그는 “부모 형제 가슴에 왜 그런 대못을 박았는지 내 인생에서 가장 괴롭고 아픈 시절이었다”고 했다.
잃기만 한 건 아니었다. ‘가을 들국화의 향기’가 나는 첫사랑이자 지금의 부인을 만났다. “저는 중학교도 못 나왔는데요”라고 머뭇거렸지만 거래처 대리는 “에어컨 기술도 있고, 무엇보다 김 사장은 눈이 살아 있다”며 여동생을 소개해 줬다. 사업을 접고 다시 들어간 ‘대화설비’ 사장으로부터 그토록 알고 싶었던 냉동고 설계 노하우가 빼곡히 기록된 ‘너절한 노트’도 얻었다. 설계 능력까지 갖춘 진정한 냉동기술자가 된 것이다.
공돌이 생활 18년. 서른세 살 되던 해인 1989년, 청계천8가 뒷골목에 ‘대흥설비’ 간판을 걸었다. 그리고 1년 뒤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대기업인 SKC선경화학으로부터 독일제 폴리에틸렌 필름 증착용 냉동설비를 고쳐줄 수 있느냐는 SOS가 날아들었다. 20억 규모의 설비였지만 냉동이 안 되면 무용지물. 시간 단위로 막대한 손해가 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유지보수 용역계약. “처음엔 청계천에서 수원까지 왔다 갔다 한 교통비만 받으려 했는데 SKC는 ‘그래 가지고 무슨 사업을 하겠느냐’며 제대로 용역계약을 맺자고 하더군요. 그래서 연간 1억 원을 불렀습니다. 당시 직원 4명에 한 달 경비가 300만 원쯤이었는데 여윳돈이 생긴 겁니다…. 하지만 저는 기술자고, 냉동설비를 제조하는 사업가였습니다. SKC만 쳐다보고 있으면 월급쟁이밖에 더 되겠습니까.”
냉동 사업은 여름 한 철만 바쁘다. 계절적 한계를 극복하는 게 시급했다. 그때 눈에 띈 게 도 컨디셔너(Dough Conditioner), 바로 빵 반죽 숙성기였다. 전날 반죽을 해놓고 시간 예약만 해놓으면 다음 날 아침 빵을 구워내는 자동화 기계로, 2명의 작업자를 절감시켜 주는 효과가 있었다. 어렵지 않게 생각했지만 시운전 결과는 실패였다. 냉동기술만 알았지 생지(生脂)를 ‘생쥐’로 착각할 만큼 빵 만드는 과정 자체를 몰랐던 탓이다. ‘반쪽 공돌이’였던 셈이다.
‘나는 공돌이다!’ 그는 스스로를 다잡았다. 1994년, 결국 디지털 방식의 도 컨디셔너를 개발했다. 성공이었고, 일본에서까지 사 갈 정도가 됐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냉(冷)과 열(熱)의 융합’에까지 생각이 미쳤고, 컨벡션 오븐을 개발했다. 업계에선 “제빵산업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는 평가가 나왔다.
김 대표의 국산 도 컨디셔너는 대형 식품회사는 물론이고 특히 외환위기 직후 수많은 동네 빵집들에 ‘작은 복음’이 됐다. 김 대표는 “뚜레쥬르 2000여 곳을 비롯해 3000여 곳의 제과점에 우리 기계가 들어가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그는 아침이면 멍키스패너를 들고 출근하는 ‘영원한 공돌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그는 “다만 정주영 회장의 창학(創學) 정신을 본받아 한국숙련기술사관학교와 기술인장학재단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때까지는 멍키스패너를 놓지 않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①김대인 ㈜대흥제과제빵기계 대표(명장)
②김순자 ㈜한성식품 대표(명장)
③이건희 ㈜단디메카 대표(국제기능올림픽 수상)
김창혁 기자 c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