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오지환(왼쪽 끝)이 8월 11일 대구 삼성전 도중 상대 2루주자의 사인 훔치기 의혹을 제기하며 심판진에게 항의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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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 훔치기와 정정당당 야구의 기준
박재홍 2루 사인 훔치기 논란…KS 날릴 뻔
김재박감독 “눈치껏 잘 알아내는 것도 기술”
도루·트릭 플레이 비교 기준 설명하기 애매
배터리 사인 훔치기는 명백한 반칙행위 규정
김응룡감독, 국제대회선 기존 사인도 변화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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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임수와 정정당당의 기준이 애매한 야구
야구는 상대를 속이는 경기다. 투수는 타자를 속이고, 주자는 상대 수비의 빈틈을 파고들어 베이스를 훔친다. 이러다보니 센스 넘치는 야구와 정정당당하지 않은 야구의 기준이 애매모호해진다. 야구에도 ‘애정남’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기에 메이저리그의 불문율을 판단기준으로 들어본다.
우선 반칙행위. 타석에서 배터리의 사인을 훔치는 경우다. 어지간해선 드러나지 않는다. VTR로 상대 타자를 분석하다 타자의 눈동자 위치를 보고 찾아낸다. 다음 경기에 무조건 보복이다. 아무 이유가 없어도 빈볼이 날아간다.
2루에서 사인 훔치기. 상대가 눈치 채지 못하게 세련되게 하면 문제없다. 엉성해서 들키는 것이 문제다. 보복은 그래서 한다. 좀더 세련되게 하라는 얘기다. 주자가 2루에 있으면 투수가 간단한 손가락 사인을 포수에게 보내 사인 훔치기를 예방할 수 있다.
어느 팀 2루 주자의 해프닝 하나. 상대의 사인을 훔쳤다. 가운데 포크볼이었다. 몸쪽 코스이면 왼쪽 허벅지, 반대는 오른쪽 허벅지를 만져 타자에게 사인을 주기로 약속했다. 가운데?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의 그 부분을 어루만졌다. 이유를 아는 사람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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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에서 시선과 반대방향으로 패스하는 것은 흔한 장면이다. 배구의 시간차 공격도 마찬가지다. 구기종목 중 유일하게 정적이면서 동적인 야구는 ‘속고 속이는’ 머리싸움이 더 치열하다. 그 중에서 사인 훔치기는 센스 넘치는 야구와 정정당당하지 않은 야구의 경계에 있다. 스포츠동아DB
○사인 훔치기보다 더 정교해야 하는 습관 알아내기
포스트시즌이나 큰 경기에 가면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쿠세’다. 일본어로 ‘습관’이란 뜻이다. 특히 투수의 피칭 습관을 알아내는 것은 포스트시즌서 정보분석팀의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1986년∼1989년,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해태가 1990년 삼성과의 플레이오프에서 패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믿었던 선동열이 KO 당해서다. 김용철, 김용국 등에게 홈런을 맞고 체면을 구겼다. 삼성 전력분석팀은 선동열이 슬라이더와 직구를 던질 때 글러브의 위치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냈다. 시즌 초반 잘나가던 외국인투수들이 우리 타자들에게 나중에 혼나는 이유도 습관을 찾아내 공략하는 세밀한 야구를 견뎌내지 못해서다.
프로야구 초창기 재일동포 투수 김기태(청보∼삼성)가 있었다. 손이 땅에 닿을 듯이 던지던 전설적인 잠수함 투수였다. 일본프로야구 100승 투수였던 그에게도 약점이 있었다. 바로 눈이었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시력이 떨어져 밤에는 포수의 손가락 사인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였다. 결국 포수가 적당히 양쪽 무릎을 어루만지는 것으로 사인을 대신했다. 처음에는 이를 알아채지 못했지만 세상에는 비밀이 없었다. 결국 김기태는 한국에서 이름값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채 조용히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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