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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이슈]비야, 녹조에 퍼부어라… 태풍아, 적조에 몰아쳐라

입력 | 2012-08-25 03:00:00

식물성 플랑크톤 ‘조류’의 공습에 무기력한 인간




21일 항공기에서 내려다본 전남 해역이 붉은 띠로 물들어 있다. 남해안 곳곳에 적조 경보 및 주의보가 발령됐지만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황토뿌리기가 전부다. 오른쪽 아래는 22일 여수 인근에서 채집해 현미경으로 본 코클로디니움. 국립수산과학원 제공

#1.

지금으로부터 약 1000년 전. 중국 남부 지역에서 강을 건너던 군대가 몰살했다. 군을 이끌던 장수는 “부하들이 강물을 마셨을 때 강이 녹색이었다”는 기록을 남겼다. 이것이 현재 알려진 최초의 녹조 피해 사례다.

#2.

1878년 영국 학술잡지 네이처에 호주의 유독한 호수’란 글이 실렸다. 글을 쓴 조지 프랜시스는 호주 머리 강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어귀에서 초록색 유성 페인트 같은 두꺼운 찌꺼기 띠를 봤다”며 “야생동물들이 강물을 먹자마자 처참하게 죽어갔다”고 묘사했다. 》
올해는 유난히 녹조와 적조 이야기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민물의 녹조는 주로 남조류가 일으키는데, 올여름엔 그중에서도 아나베나(Anabaena)와 미크로시스티스(Microcystis)가 주종을 이뤘다. 특히 사람들에게 경계심을 일으킨 것은 남조류가 죽으면서 나오는 지오스민(Geosmin)이란 흙냄새 유발물질이었다. 비록 인체에 무해하다고는 하나 당장 수돗물에서 흙냄새가 나니 사람들이 공황상태에 빠져들었다. 어떤 이들은 4대강 사업이 녹조의 원인인지 아닌지를 놓고 때 아닌 정치논쟁까지 벌였다.

바다의 적조는 이미 오래전부터 주요 재해 중 하나가 되어 왔다. 남해안의 양식어장 피해가 매년 계속되고 있다. 어선을 통째로 삼킬 듯한 거대한 붉은 띠는 보는 이에게 공포감을 심어준다.

○ 수온 낮아도 적조 생겨

녹조에 대한 조류주의보는 ‘엽록소a 농도 m³당 15∼25mg’과 ‘조류세포 수 mL당 500∼5000cells’의 두 가지 기준을 2회 이상(보통 검사를 1주에 1회 한다) 연속 초과하면 발령한다. 경보는 ‘엽록소a 25∼100mg’과 ‘조류세포 5000∼100만 cells’을 2회 이상 초과한 경우다. 경보보다 더 심한 경우는 ‘조류 대발생’이라 부르는데, 이는 조류경보시스템을 가동한 1997년 이후 금강 회남수역에서 딱 한 번(2001년 8월) 있었다.

조류주의보는 지난달 27일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삼봉리에서 발령됐다. 팔당댐 앞은 이달 3일, 서울 강동대교∼잠실대교 구간에선 9일 각각 주의보가 내려졌다. 이 주의보들은 24일까지 모두 해제됐다. 반면 금강 대청호의 회남수역은 6일 주의보가 발령됐다가 23일 오히려 경보로 격상됐다.

금강유역환경청 수생태관리과의 이종현 주무관은 “녹조는 일사량, 수온, 영양염류 세 가지 조건이 만족될 때 발생한다”며 “물이 바로바로 빠져나가는 팔당호에 비해 대청호에 들어온 물은 몇 달씩 머무는 경우가 많아 녹조에 더 취약하다”고 설명했다.

적조 역시 조류 때문에 생긴다. 우리나라에서 적조를 일으키는 조류는 주로 와편모조류의 코클로디니움(Cochlodinium·여름철 어류의 호흡을 방해함)과 알렉산드리움(Alexandrium·봄철 패류독성을 일으킴)이다.

적조가 생기는 원인은 녹조의 경우보다 다양하다. 국립수산과학원 적조상황실의 박태규 박사는 “바다는 강과 달리 염분, 파도, 조류, 태풍 등 다양한 요소들이 있기 때문에 매년 발생원인이 다르다”며 “올해는 폭염으로 인한 수온상승이 가장 큰 원인으로 파악되지만, 2003년에는 수온이 낮았음에도 적조가 크게 발생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경남 남해군에서 지난달 30일 주의보(조류세포 mL당 300∼1000cells)가, 이달 8일에는 경보(조류세포 1000cells 이상)가 각각 발령됐다. 점점 피해수역이 확대돼 23일 기준으로는 전남 완도군과 경남 남해군 사이, 경남 통영시 인근에 경보가, 남해군과 통영시 사이, 통영시와 거제시 사이, 완도군 인근 등에 주의보가 내려져 있다

적조는 한 번 발생하면 두 달 정도 지속되는 경우도 많다. 2003년과 2008년(이상 62일)을 포함해 50일 이상 적조주의보가 지속된 해가 1995년 이후 7차례나 된다. 대부분은 태풍이나 수온저하에 따라 자연 소멸되곤 했다.

○ 무기력한 인간

녹조나 적조의 기본적인 발생 과정은 간단하다. 질소(N)와 인(P) 등 유기물질이 물 속에 많이 녹아들어 ‘부영양화’ 상태가 되면 조류(식물성 플랑크톤)들이 크게 번성하는 것이다. 질소와 인은 비료의 주요 성분 중 하나인데, 물이 오염되면 그 양이 많아진다.

녹조와 적조는 수온상승 등으로 조류를 먹이로 하는 동물 플랑크톤이 너무 적어져도 생긴다. 어쨌건 조류가 많아지면 물 속의 용존산소량이 부족해지고, 물고기와 조개류가 질식해 죽어나가게 된다.

문제는 녹조와 적조에 대응할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다. 흔히 사용하는 황토 살포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게다가 황토 때문에 가라앉은 조류가 썩으면서 수질이 악화될 염려까지 있다. 이번에도 녹조 문제를 해결해 준 것은 결국 하늘에서 내린 비였다. 적조 피해가 확산되고 있는 남해안에서는 오매불망 수온이 낮아지기만 기다리고 있다.

신재기 K-Water(한국수자원공사) 수자원연구소장은 “녹조든 적조든 가장 좋은 것은 예방이고, 그 다음이 조기 처리”라고 강조했다. 지금처럼 주의보, 경보가 발령된 다음에 행동에 나서면 정수비용만 많이 들 뿐 효과가 적다는 것이다. 그는 2010년 현장에 투입한 녹조제거선(여과 및 초음파장치를 통해 조류를 파괴하는 선박)의 제거효율을 현재 57%에서 90% 이상으로 높이고, 지난해 개발한 조류방제선(황토를 조류와 섞어줘 제거 효율을 높인 선박)의 기능을 업그레이드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적조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국립수산과학원은 살조세균, 살조바이러스, 천적(동물성 플랑크톤) 등을 이용한 친환경방법을 연구하고 있지만 실용화하려면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 조류에 기포 붙여 띄우는 기술 연구중 ▼


조류 발생의 근본적 원인은 질소와 인의 증가에 있다. 가장 이상적인 해결책은 물속 질소와 인의 수치를 관리하는 것이다. 이는 과식을 해 탈이 나기 전에 미리 식사량을 조절하는 것과 같다. 상수원에 들어오는 질소와 인의 발생원은 여러 가지다. 축산 폐수와 가정에서 버리는 분뇨가 대표적이다. 장기적으론 이런 오염물질을 오염원 인근에서 충분히 정화한 후 흘려보내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일단 조류가 발생했을 땐 가장 빠른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제거해야 한다. 그러려면 조류의 형태적, 발생적 특성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조류는 보통 원형이나 침형이다. 크기는 5∼100μm(마이크로미터·1μm=100만분의 1m)이며, 모두가 음(―)의 전하를 갖고 있다. 수면 아래 1∼2m에서 아래위로 이동하는데, 무게가 가벼워 잘 가라앉지 않는다. 황토를 뿌리는 것은 조류에 무거운 입자를 붙여 가라앉히기 위함이다. 문제는 조류가 죽어서 남긴 질소와 인이 또다시 부영양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조류를 가라앉히는 대신 공기 방울(기포)에 붙여 띄운 다음 제거해버리면 어떨까. 이는 환경부의 ‘차세대 에코이노베이션’ 연구과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기포가 조류에 잘 붙으려면 조류와 크기가 비슷하면서 반대, 즉 양(+)의 전하를 가져야 한다.

먼저 ‘맞춤형 기포 발생기’를 통해 조류처럼 작은 기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기포는 보통 음의 전하를 띠는데, 이것을 알루미늄(Al)이나 철(Fe) 등 양이온이 있는 공간에 통과시키면 양의 전하를 갖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포를 수면 아래쪽에 뿌려주면 조류와 붙어 함께 떠오른다. 건져낸 조류의 물기를 뺀 다음 대체연료로 활용하는 첨단기술도 현재 개발되고 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방이다. 비가 오지 않으면 당장 물이 부족하고, 녹조가 생기는 것은 분명 물 관리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수돗물의 공급을 집중형의 시설에 의존하다 보니 피해를 광범위하게 키운 측면도 있다.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이 없다면 홍수, 가뭄, 녹조 등의 문제는 늘 반복될 수밖에 없다.

한무영 서울대 교수(건설환경공학), myhan@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