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동 기자
가계빚 문제를 취재하던 기자에게 한 전문가가 익명을 전제로 한 얘기다. 한 나라의 경제가 발전할수록 빚도 마찬가지로 늘어나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지나치게 위기감만 강조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물론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현재 가계부채의 상당부분은 상환 능력이 충분한 고소득자의 빚이다. 또 금융기관의 부실 대출은 어느 나라에나 있다. 설령 가계부채가 1000조 원을 돌파한다고 해도(3월 말 현재 911조 원) 갑자기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국가신용등급이 내려가는 것도 아니다.
우선 집값 하락이다. 한국경제에서 가계부채는 부동산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채무자들이 담보로 잡힌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이들의 부채 건전성이 상당한 위협을 받고 있다. 은행들이 “원금을 일부 갚지 않으면 만기연장을 해줄 수 없다”고 엄포를 놓자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급한 대로 제2금융권으로 발길을 돌리는 사람도 많다.
가계부채를 위태롭게 하는 또 다른 요인은 유럽발 경제위기와의 연관성이다. 외부 충격에 의한 경기침체가 기업의 고용 악화, 개인 소득 감소로 이어지면 지금은 큰 문제가 없는 가계라도 부채 상환능력이 눈에 띄게 악화될 수 있다. 원자재값 상승과 과잉 유동성에 따른 금리상승 가능성도 가계빚의 급격한 부실화를 촉발할 만한 요소다.
이처럼 여러 가지 외부요인이 ‘퍼펙트 스톰’처럼 한꺼번에 몰려든다면 가계부채라는 오래된 시한폭탄이 터지지 않을 것이라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이와 관련해 최근 한 민간 금융회사의 보고서가 눈길을 끈다. KB금융지주는 현재는 큰 문제가 없지만 미래의 경기상황에 따라 위험이 커질 수 있는 ‘잠재적 위험군 부채’가 75조 원, 또 이를 포함해 상환 여부가 불투명한 전체 위험부채가 180조 원이나 되는 것으로 추산했다.
▶본보 27일자 A1면
상환 불투명한 ‘시한폭탄 가계빚’ 180조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