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포 명령만 내리면 바로 발포하겠다.’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 당시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해 우리 해군 고속정 참수리호를 공격한 북한 경비정이 교전 이틀 전 상급부대에 보고한 특수정보(SI) 15자(字)다. 월간조선 7월호는 우리 해군이 통신감청을 통해 북한 경비정과 상급부대의 관련 교신을 파악하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우리 군이 북한의 도발 계획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제대로 대비하지 않아 해군 6명이 희생되고 참수리호가 침몰했다는 얘기가 된다.
서해 NLL에서 무력 충돌의 위험성을 알리는 첩보 보고가 묵살됐다는 주장은 이미 2002년 10월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당시 통신감청을 담당했던 5679부대의 한철용 소장은 2년 전 펴낸 회고록에서 “북의 도발 16일 전과 이틀 전에 포(砲) 이름과 ‘발포’ 용어가 두 차례 이상 언급된 특이 징후가 있음을 보고했지만 위에서 묵살했다”고 밝혔다. 그는 국회 국정감사장에서도 군 수뇌부가 도발 징후를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한 예비역 소장의 발언과 월간조선의 보도를 종합하면 북한의 공격 계획은 의문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확실했다.
그러나 김대중(DJ) 정부는 제2연평해전을 ‘우발적 사건’으로 평가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DJ는 ‘햇볕정책’에 박차를 가하면서 남북 관계를 교류협력 분위기로 몰아가려 했다. ‘확전 금지’를 최고의 군령(軍令)으로 정한 교전수칙을 만들어 군의 손발을 묶다시피 한 것도 DJ 정부였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를 핑계 삼아 남북 간 긴장이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북한의 도발 징후를 의도적으로 묵살했을 가능성도 있다.
광고 로드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