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브랜드들, 스타일리시한 친환경-공정무역 제품 내놔
옷장 정리를 할 때 괜스레 죄책감이 들 때가 있다. 80% 세일이라고 무작정 손에 잡혀 산 재킷, 살 빼면 입을 거라고 전시만 해둔 원피스, 산에 가지도 않으면서 ‘머스트 해브’라며 산 고어텍스 점퍼…. 이런 옷을 볼 때마다 ‘아프리카 아이들은 굶는다는데 이렇게 옷을 막 사고 버려도 되나’ ‘버려진 옷이 땅 속에서 썩기는 할까’란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이런 ‘불편한 감정’이 커져가는 만큼 ‘소비할수록 좋은 일을 한다’는 착한 소비에 눈길이 가게 된다. 과잉소비에 지친 사람이 늘어날수록 착한 소비가 주목받는 이유다.
패션에서의 착한 소비는 옷을 만드는 과정을 돌아보게 만든다. 친환경 재료를 찾는 것부터 제품을 만드는 전 과정이 까다로울 뿐 아니라 느리다. 그래서 글로벌 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패스트 패션과 반대 개념이라 ‘슬로 패션’으로 불린다. 빠르게 변하는 유행과 트렌드가 속성인 패션에서 ‘느리게 가자’는 개념은 낯설 뿐 아니라 자선활동으로 치부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슬로 패션 시장이 커질수록 스타일도 진화하고, 그 자체가 트렌디해지기 시작했다. 슬로 패션 자체가 유행이 되고 있는 셈이다.
슬로 패션의 부상
구치가 선보인 친환경 슈즈. 구치 제공
런던 패션위크에 여섯 시즌째 참여하고 있는 영국 업사이클링 브랜드 ‘정키스타일링’의 케리 시거 대표는 “전 세계에 지속가능한 패션에 관심 있는 디자이너들이 모여 영국패션협회의 후원 아래 자유롭게 패션쇼를 열 수 있다”며 “옷을 보는 관점이 기존 패션과 다르기 때문에 더 독창적인 스타일을 선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업사이클링은 소비자들이 선택하지 않아 창고에 쌓인 재고를 이용해 새로운 옷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재활용 제품에 가치를 부여한다는 의미로 리사이클링이 아닌 업사이클링으로 부른다.
올해 5월에는 패션산업, 정부, 시민단체 관계자 1000여 명이 모여 지속가능한 패션의 미래에 대해 논의하는 ‘코펜하겐 패션 서밋 2012’도 열렸다. 구치, H&M 등 글로벌 패션 브랜드의 지속가능 담당 임원과 덴마크의 메리 왕세자비, 유엔 글로벌 콤팩트와 그린피스 관계자들이 패션의 미래에 대해 발표했다. 화려함 뒤에 환경을 오염시키고, 제3세계 노동자를 낮은 임금으로 착취한다는 비난을 받아왔던 패션업체들의 자성의 목소리 속에 나온 회의였다.
유럽 국제 인증을 받은 이 소재는 분해되는 과정이 짧아 친환경적이다.
▼구치는 재활용 슈즈, 구호는 원천기부로 ‘착한 소비’ 이끌어▼
스타일 날개 달다
클럽모나코는 공정무역 단체 글로벌 굿즈, Made, 와유 타야 등과 함께 올여름 화이트 비치 스타일과 어울릴 만한 액세서리를 내놓았다. 클럽모나코 제공
클럽모나코는 올여름 공정무역을 앞세운 ‘비치 부티크’를 선보인다. 여름 휴양지에서 입을 만한 하늘하늘한 드레스나 레이스 탱크톱과 함께 과테말라와 태국 여성들이 손으로 정성껏 만든 액세서리를 함께 내놓은 것이다. 클럽모나코는 이를 위해 개발도상국 여성들의 수제품을 미국 등 해외 시장에 팔 수 있도록 지원하는 비영리 단체인 ‘글로벌 굿즈’와 손을 잡았다. 과테말라 여성들이 만든 비즈 장식의 주얼리와 인도에서 만든 리넨 스카프는 ‘공정무역’ 어감이 주는 편견이 무색하게 스타일리시하다.
재활용 소재로 만든 플립플랍도 있다. ‘오카바시’는 편안함과 단순함에 초점을 맞춘 미국 친환경 브랜드. 재활용 소재로 플립플랍을 만들어 제조 과정에서 나오는 폐기물이 제로에 가깝다. 또 낡은 오카바시 제품을 회사로 보내 달라는 캠페인을 벌여 이들 제품을 또 재활용하기도 한다.
H&M의 친환경 라인 익스클루시브 컨셔스 컬렉션을 입은 미셸 윌리엄스.
소비하면서 기부하는 코즈마케팅
슬로 패션을 기부와 결합하는 곳도 있다. 소비자가 물건을 하나 살 때마다 기업이 사회단체에 기부하겠다고 약속하는 마케팅을 ‘코즈(cause·대의명분) 마케팅’이라고 한다. 인기 신발 브랜드 탐스가 대표적이다. 신발을 하나 사면 아프리카 어린이에게 신발 한 켤레를 전달하는 일대일 기부공식으로 전 세계 돌풍을 일으켰다.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지난해 남성 슈즈의 새로운 라인 ‘페라가모 월드’를 선보이며 착한 기업 열풍에 동참했다. 페라가모 월드 라인의 모든 신발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만들어졌다. 수성 접착제를 써서 유해물질을 줄이도록 했고, 친환경 소재를 썼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페라가모는 인도 파키스탄 동아프리카 지역 빈민을 돕는 어큐먼 펀드와 제휴했다. 소비자들이 페라가모 월드 제품을 살 때마다 수익금 일정 부분을 어큐먼 펀드에 기부해 빈민 지역에 깨끗한 물, 농업용 자재 등을 전달하도록 한 것이다. 하비에르 수아레스 페라가모 남성 가죽 부문 제품 디렉터는 “페라가모는 어큐먼 펀드와 협력하면서 지속 가능한 개발에 힘쓰고, 빈곤을 퇴치하는 일에 적극적인 사회적 의식이 있는 기업이 되겠다는 다짐을 더 굳건히 했다”고 말했다.
친환경 시계 ‘위우드’는 제품이 한 개 팔릴 때마다 비영리단체 ‘아메리칸 포레스트’를 통해 나무를 한 그루 심고 있다. 이탈리아 피렌체 브랜드인 위우드는 시계를 천연 나무로 만든다. 나무를 낭비하지 않기 위해 남는 나뭇조각들을 활용해 제작되는 것이 특징이다. 브랜드의 모토 자체가 ‘파괴되는 생태계를 구하다’이다.
제일모직 구호도 매년 티셔츠를 팔 때마다 전 수익금을 시각장애 아동의 개안수술에 쓰는 ‘하트 포 아이’ 캠페인을 9년째 이어오고 있다. 특히 올해는 2주 만에 전체 초두물량 4000장 가운데 80%가 팔려나가 최근 추가로 3000장을 더 주문했다. 윤정희 제일모직 구호 팀장은 “올해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착한 소비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고, 소셜테이너의 대표격인 이효리가 캠페인에 참여해 소비자 반응이 폭발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