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육식의 기원
인류가 많은 고기를 섭취했다는 증거가 된 ‘ER 1808’ 화석.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 소장
○ 초기 인류의 사냥법?
케냐의 드넓은 벌판을 생각해 봅시다. 그런 초원에서 고기를 구하는 일은 초기 인류에게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초기 인류의 키는 100cm 정도로 지금의 서너 살짜리 어린아이와 비슷한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서너 살짜리 아이들이 초원에서 사자들을 제치고 빠르게 달리는 아프리카 영양을 뒤쫓아 가 잡는 모습이 상상되시나요. 도리어 사자 밥이 되기 십상일 것입니다. 게다가 경쟁자는 사자뿐만이 아닙니다. 치타를 비롯해 사냥감을 노리는 몸집 큰 육식동물이 초원에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래서 초기 인류는 사자부터 독수리와 하이에나까지, 모든 경쟁자가 말랑말랑한 내장과 고기를 다 발라먹고 간 후를 노리는 전략을 선택했습니다. 다 발라먹은 사냥감에는 뼈만 남아있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팔다리의 뼈에는 골수가 있고 머리뼈 속에는 뇌가 있습니다. 지방이 풍부한 먹을거리입니다. 게다가 이를 노리는 경쟁자는 벌레와 박테리아 정도밖에 없습니다. 이 정도는 연약했던 초기 인류도 쉽게 무찌를 수 있죠.
다만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팔다리나 머리의 뼈는 매우 단단합니다. 특히 팔다리뼈는 먼 훗날 인류가 무기로 사용할 정도로 두껍고 단단합니다. 그래서 초기 인류는 돌로 뼈를 깨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이후 뼈를 깨는 돌은 점점 그럴듯한 모양새를 갖춘 석기가 되었습니다. 호모하빌리스가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올도완 석기’(돌 두 개를 서로 마주쳐 그 돌 자체나 떨어져 나온 조각에 날을 세운 석기)는 이렇게 뼈를 깨는 데 사용한 석기로 추정됩니다.
○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새로운 먹을거리
이렇듯 초기 인류가 고기를 얻는 일은 멀고도 험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수모’를 겪어가면서까지 굳이 육식을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렇다면 인류는 언제부터 육식을 했을까요. 400만∼500만 년 전에 나타나기 시작한 초기 인류는 분명히 다른 유인원처럼 채식 위주의 식생활을 했습니다. 화석을 보면 어금니가 크고 깊숙한 모양의 턱뼈를 지니고 있는데 이것은 많은 양의 음식물을 수없이 씹어 먹었을 때 보이는 특징입니다. 즉, 채식의 증거이지요.
그러나 적어도 170만 년 전쯤에는 상황이 변했다는 사실이 화석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1974년 케냐의 쿠비포라에서 발견된 ‘ER 1808’이란 화석은 사망 시기를 전후해 뼈가 비정상적으로 두꺼워져 있었습니다. 인류학자들은 이것이 뼈에 출혈이 일어났기 때문이며 비타민A 과다증이 그 원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비타민A 과다증은 육식동물의 간을 너무 많이 먹으면 나타납니다. 즉, 이때는 인류가 이미 과다증 증세를 보일 정도로 많은 고기를 섭취했다는 뜻입니다.
○ 고기 먹은 후 뇌와 몸집 커져
400만∼500만 년 전의 초기 인류(왼쪽)와 300만∼350만 년 전에 직립보행을 하며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초기 인류 ‘루시’(오른쪽). 이상희 교수 제공
400만∼500만 년 전 초기 인류의 뇌 크기는 현생 침팬지와 비슷한 400∼500cc였습니다. 그 뒤에 나타난, ‘손재주가 있던’ 호모하빌리스의 뇌 크기는 750cc가량으로 커졌습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초기 인류의 몸집은 여전히 100cm 전후로 작았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직립보행을 했던’ 호모에렉투스에 이르러 두뇌는 1000cc, 몸집은 170cm까지 커졌습니다.
이상희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 인류학과 교수 sang-hee.lee@ucr.edu
정리=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 이 글은 ‘과학동아’와 동아일보 주말섹션 ‘O₂’에 동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