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특강서 아랍의 봄-정보화 위력 언급
○ 비핵화는 없다?
정부 내에서는 이 대통령의 특강 내용이 북핵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동안 미국과 중국의 기본적인 한반도 전략은 ‘안정 우선’이었다. 즉 북핵 6자회담을 통해 북한의 핵 개발을 유예 또는 포기하도록 하면서 적당한 ‘당근’을 제시해 북한을 관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핵 개발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밝힌 이상 이런 전략이 의미가 없다는 데 한-미-중 정부가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대통령이 특강에서 통일 준비를 강조한 것이나 류우익 통일부 장관이 18일 기자간담회에서 북핵문제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주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한국외국어대 특강에서 한반도 통일의 비전을 제시한 데 이어 북한이 장거리로켓을 발사한 직후 “북한이 다른 길을 갈 때까지 고립시킬 것”이라는 강경한 입장을 밝힌 점, 중국 정부가 북한을 규탄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성명 채택에 동의하고 중국 학계에서도 ‘한반도 통일이 중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점 등을 정부는 주목하고 있다.
○ 북한에 대한 깊은 실망
지난해 12월 17일 김정일이 사망한 뒤 정부 내에서는 ‘스위스 유학을 통해 서구적 사고방식을 배운 젊은 지도자가 개혁·개방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나왔다. 이 대통령이 올해 신년 연설에서 “(북한에) 기회의 창을 열어놓고 있다”고 말한 것도 이런 기대가 반영된 것이었다. 북한도 미국과의 2·29 합의를 통해 이런 기대에 부응하는 듯했다.
하지만 북한은 북-미 합의 보름 만에 장거리로켓 발사 계획을 발표했고, 중국까지 만류에 나섰지만 결국 로켓 발사를 강행했다. 또 김정은 정권은 민생보다는 ‘선군(先軍)체제’를 강화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고, 한국 정부를 향해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다양한 원색적 표현을 쏟아내고 있다. 20일과 21일에도 평양과 평안남도, 함경남도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우리 정부를 원색적으로 규탄하는 군중대회가 열렸다.
여기에 북한이 3차 핵실험을 위한 구체적인 준비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되면서 이 대통령은 ‘더는 김정은 정권에 기대할 것이 없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최진욱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통령의 특강 내용을 보면 김정은에 대해 기대감을 가졌던 것에 대한 불만과 좌절감이 묻어난다”며 “북한의 잘못된 행태를 다시 한 번 지적함으로써 기존 대북정책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대통령이 ‘아랍의 봄’과 정보화의 위력을 언급한 것에 대해 “이 대통령이 북한의 체제 붕괴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북한 당국이 강력하게 정보를 통제하고 있지만 장마당(시장)을 통해 외부 정보가 유통되고 있는 데다 이미 휴대전화가 100만 대 이상 보급돼 있어 정보를 완벽하게 차단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