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논설위원
‘태평성대’로 기억하는 사람들
이명박(MB) 정부 얘기가 아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8월 동아일보와 코리아리서치센터의 국정운영 평가 여론조사 결과다. ‘광화문에 빌딩을 가진 신문사’ 조사여서 부정적인 것도 아니다. 2008년 2월 시사저널이 “노무현이 다시 출마하면 지지하겠나” 물었더니 10명 중 8명이 아니라고 했고, 7명은 노무현 세력의 조직화에도 반대했다.
지금 선거판에는 노 정권을 태평성국(太平盛國)으로 띄우는 사람 천지다. 민주통합당이고 통합진보당이고 ‘노무현 정신’으로 집권해야만 화합과 소통이 넘치고 양극화가 사라질 것처럼 외치고 있다.
누군가는 거짓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연구결과가 적지 않다. 사람의 기억은 비디오테이프가 아니라 슬라이드 같아서 정확하게 복기하긴 힘들다는 거다. 당시의 그리고 현재의 상황은 물론이고 감정과 주변 반응에 따라 사실과 다를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번 선거에서 노무현 정신을 내거는 것도 MB에 대한 반감을 겨냥한 득표 전략이라고 이해는 한다. 그러나 마오쩌둥도 공(功)이 70%, 과(過)가 30%로 평가받는데 노무현처럼 공이 99%요, 과는 1%도 안 되는 듯이 숭배되는 건 가히 신의 경지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부활한 것처럼, 그는 부엉이바위에서 죽음으로써 대한민국의 구원자로 부활한 형국이다.
하지만 내 기억이 아니라 기록에 따르면, 당시 우리나라는 화합과 소통이 아니라 ‘파업 공화국’이었다. 출범 무렵 글로벌 경제위기가 터진 MB정부와 달리 노 정부 5년은 세계경제가 유례없는 호황이었는데도 우리의 연평균 성장률은 아시아 네 마리 용 중 꼴찌(4.3%)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정도만 빼고는 반(反)시장 반법치 친(親)노동의 좌파적 포퓰리즘으로 밀어붙인 탓이다. 국가보안법 폐지가 개혁이라며 절반 이상의 국민을 개혁의 적처럼 몰던 그 지긋지긋한 갈등은 치매에 걸린대도 못 잊을 판이다.
그때도 시대착오적이던 정책기조를 노무현교(敎) 신자들은 더 뒤쪽으로, 한참 좌측으로 뭉쳐서는 ‘2013년 체제’에서 구현할 태세를 보이고 있다.
좌로, 더 후진해 ‘사람 사는 세상’?
그의 말대로라면 민주당이 다수당이 된대도 승리는 오래갈 수 없다. 분노를 일으켜 집권해서는 더 큰 분노의 부메랑을 맞을 게 뻔하다. 이슬람 국가로 치면 간신히 벗겨낸 부르카(여성 전신을 가리는 베일)를 수구꼴통 탈레반이 돌아와 다시 씌우겠다는 것처럼 시대와도, 세상과도 안 맞는 정책들을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증오하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고 김병준은 강조했다. 성장 없이 복지만으론 양극화 문제를 풀 수도 없다. 특히 일자리 문제를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고민해 봤다면 한미 FTA는 반대할 수가 없는 사안이다.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의 장벽이 열리면서 2040세대를 위한 더 좋은 일자리가 쏟아질 수 있는데 이를 막는 건 무책임하거나 무능하다.
공산주의가 무너질 무렵 ‘역사의 종언’을 썼던 미국 스탠퍼드대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가 지난해 ‘워싱턴 컨센서스 이후’에서“글로벌 위기를 겪는 서구의 큰 시장 작은 정부와 개발도상국은 한참 멀다”며 탈규제와 시장자유화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강조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참여정부 때는 안 하고 못 했던 정책기조를 김병준은 늦었지만 성실하게 책으로 풀어냈다. 입만 열면 서민을 위한다면서도 전·월세 상한제, 비정규직 폐지 같은 정책으로 서민에게 더 큰 고통을 안기려는 노무현교의 숱한 ‘입 진보’들과 대조적이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