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1호기 지난달 9일 12분간 전원 끊겨어제 뒤늦게 가동정지… 조직적 은폐 의혹
13일 원자력안전위원회(안전위)에 따르면 한수원은 지난달 9일 오후 8시 34분부터 8시 46분까지 12분 동안 계획예방정비 중인 고리 1호기의 전원 공급이 중단됐다는 사실을 한 달여가 지난 이달 12일에야 늑장 보고했다.
▶ [채널A 영상]노심이 녹아내릴 수도…아찔했던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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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 1호기 운영을 맡고 있는 한수원은 지식경제부 소속이기는 하지만 원전 안전관리 분야에서는 관련 법령에 따라 안전위의 통제를 받고 있으며, 안전 관련 사고 발생 15분 내에 안전위에 보고하도록 돼 있다.
문병위 사고 당시 고리1발전소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왜 보고를 안 했느냐”고 묻자 “드릴 말씀이 없다. 당시 고리 1호기를 안전하게 잘 돌려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너무 컸다. 죄송하다”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
○ 실수로 내부 차단기 한꺼번에 작동
이번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한수원은 우선 발전기용 보호계전기(비상시 발전기 보호를 위해 전력을 차단하는 기기)를 점검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내부 차단기 3개 중 2개를 한꺼번에 작동시켜 내·외부 전원이 끊겼다고 밝혔다. 보호계전기는 내부 차단기가 2개 이상 작동하면 전원을 바로 차단하도록 설계돼 있다. 한수원 정비 규정에 따르면 외부 전원이 차단되지 않도록 차단기를 하나씩만 테스트하도록 돼 있다.
이어 내·외부 전원이 모두 끊기면 바로 돌아가야 하는 비상디젤발전기조차 제때 작동하지 않았다. 한수원 측은 “한 달 전 해당 비상발전기를 점검했을 때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갑자기 문제를 일으켰다”고 해명했다. 이에 따라 당시 한수원은 외부 전원을 급하게 수동으로 연결시키느라 12분을 소요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고가 발생한 시기는 핵연료 교체를 위해 발전소를 정지시키고 각종 기기를 점검·보수하는 계획예방정비 기간(2월 4일∼3월 4일)이었다. 사고 당시에는 핵연료 교체 전으로 원자로와 사용후 핵연료 저장조에 냉각수가 채워져 있었지만 정전이 된 뒤 남은 열을 제거하기 위한 냉각설비가 작동을 멈췄다. 만약 원자로가 정상 운전 중에 이 같은 사고가 발생해 수천 도에 이르는 원자로의 잔열 제거장치가 작동하지 않은 채로 1, 2시간이 지나면 노심이 녹아내리는 중대사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 안전위 “심각한 도덕적 해이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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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원전 안전 전문가는 “원자로 운전 정지 후 시간이 얼마나 지났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원전 내 전원이 완전 사라진다고 해서 바로 위험한 상태로 간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특히 국내 원전 하드웨어는 전원 차단에 대비해 여러 안전장치를 갖추고 있다”며 “원전 전원 상실 후 후속조치가 어떻게 이뤄졌는지에 대해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 일본 언론 민감하게 반응
일본 언론은 한국의 고리원전 1호기가 외부 전원이 끊기고 비상발전기도 작동하지 않은 사고가 발생했음에도 이를 1개월이나 숨겨 왔다며 민감하게 반응했다.
도쿄신문은 13일자 석간 1면에 ‘고리원전 모든 전원 상실, 1개월 은폐’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고리원전의 모든 전원이 끊겨 원전 냉각에 지장을 줄 수 있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전했다. 이어 “한국 원자력안전법은 사고가 발생하면 지체 없이 정부에 보고하도록 돼 있지만 원전 운영사인 한국수력원자력은 1개월 넘게 숨겨 왔다”고 꼬집었다.
이 신문은 “고리 1호기는 1978년 한국에서 최초로 상업운전을 시작한 노후 원전으로 2007년에 설계수명(30년)이 끝났음에도 10년간 연장 운전을 결정했다”며 “원전에서 일본 후쿠오카(福岡)까지 거리는 200km”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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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하 동아사이언스 기자 edmondy@donga.com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