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바꾼 동일본 대지진/박형준 지음/208쪽·1만3000원·논형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과 뒤이은 쓰나미, 방사능 누출로 일본은 크게 휘청거렸다. 2만 명 가까이 목숨을 잃거나 행방불명됐고 ‘나도 갑자기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단시간에 확산됐다. 동일본 대지진은 일본의 지각만 흔들어놓은 게 아니다. 사회, 문화, 종교, 산업 등에서 일본인들의 가치관을 크게 바꾸어놓았다.
동아일보 기자인 저자는 동일본 대지진 발생 직후 일본 현장에 보름 동안 파견됐고, 같은 해 7월 일본 외무성 초청으로 복구 상황을 열흘간 살펴봤다. 이후 게이오대에서 1년간 객원연구원으로 지내며 대지진 후 일본사회의 변화를 심층적으로 연구했다.
당시까지 일본인들의 주택구매 기준은 실용, 도심, 학군이었다. 그러나 대지진 후 무엇보다 안전이 중요한 요소로 떠올랐다. 2011년 4월 도쿄의 20층 이상 고층 아파트 값은 전년 대비 82.8% 급락했다. 반면 천재지변으로 전력 공급이 되지 않아도 걱정 없는 가정용 태양열 발전시스템, 내진 설계, 비축 창고를 갖춘 집이 인기다.
동일본 대지진 발생 닷새 후 아키히토 일왕도 TV를 통해 5분 56초짜리 비디오 담화를 내보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피해 현장을 다니며 주민들을 위로하는 그의 모습에 “종전 직후를 떠올리게 한다”고 말하는 일본인도 많았다.
저자는 동일본 대지진을 겪고도 일본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것은 ‘정치 행태’라고 꼬집는다. 그는 “재난현장에서 수많은 자원봉사자를 만났지만 공무원은 거의 볼 수 없었다”며 “대지진은 정치 리더십에 대한 일본인들의 뿌리 깊은 불신을 확인하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