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엽 주아일랜드 대사
유럽이 처한 경제적 어려움은 표면적으로 재정과 금융 문제 때문에 발생한 것처럼 보인다. 현재 논의 중인 EU의 신(新)재정협약이 타결돼 범EU 차원의 재정정책이 시행되면 재정난을 겪는 국가들이 일시적으로 어려움을 극복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경제 위기를 벗어날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이번 EU 위기의 본질은 개별 회원국 경제의 구조적인 취약성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유럽 각국의 실물 경제 기반이 크게 다르다는 점이 위기 극복을 낙관할 수만은 없게 하는 요인이다.
유로존 상황이 어렵기는 하지만 산업 기반이 확고한 독일 같은 경우 수출이 계속 증가하고 생산활동도 활발하며 고용 상황도 호조를 보이고 있다. 반면 그리스와 포르투갈 같은 국가들의 경제는 관광업 등 서비스 산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고 제조업 등 다른 산업 분야는 매우 취약한 편이다. 필자가 주재하고 있는 아일랜드는 그리스 다음으로 구제금융을 받아 가까스로 위기를 극복해 나가고 있다.
유럽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 조치가 선행되어야 한다. 첫째, 유럽 사회에 전반적으로 퍼져 있는 높은 임금과 과도한 사회보장비용 등 고비용 구조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 둘째, 경쟁에서 확고한 우위를 차지할 신성장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셋째, 아무리 좋은 정책도 사회적 합의 없이는 성공하기 어려우므로 구조조정 과정에서 생겨나는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해야 한다.
아일랜드 정부 관리와 전문가들은 당면한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데 참고하려고 한국의 1997년 외환위기 극복 사례에 대해 종종 묻곤 한다. 필자는 당시 우리 정부가 대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대규모 산업 구조조정과 첨단산업 육성 그리고 재정 긴축이 아닌 재정 확대정책을 통해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면서 경제 개혁을 위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 냈다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EU의 경제 위기를 남의 집 불구경하듯 보아서는 안 된다. 세계 최대의 경제권인 EU는 우리에게 두 번째로 큰 시장이다. 우리는 그 불이 언제 우리에게 번져올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면서 우리 나름의 대응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김창엽 주아일랜드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