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전 애니메이션에 벌써 고성능 전기 스포츠카가…
배경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남극 대폭발로 인류의 절반이 사라진 뒤 지하도시로 재건된 2015년의 일본 ‘제3신(新)도쿄시’, 자신을 버린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호출을 받은 14세 소년 이카리 신지는 파란 스포츠카를 몰고 마중 나온 연상의 여인, 카츠라기 미사토를 만납니다. 평범하고 내성적인 중학생의 삶은 이 만남을 시작으로 생체병기 로봇을 타고 인류의 존망을 좌우하는 거대한 운명의 소용돌이에 빠져듭니다.
카츠라기가 이카리를 마중 나올 때 운전하는 차는 프랑스 르노자동차의 알핀 A310. 르노가 독일 포르셰의 경쟁 기종으로 야심 차게 개발한 고성능 스포츠카입니다. 1971년 스위스 제네바 모터쇼에서 첫 선을 보인 뒤 1985년까지 1만여 대가 팔렸습니다. 극 중 이 차는 일본 교통상황에 맞게 오른쪽에 운전대가 달려 있고, 수동 모드를 지원하는 ‘H매틱(변속기가 H형태로 움직여 기어를 옆으로 민 뒤 위아래로 움직여 변속이 가능한 형태)’ 자동변속기의 묘사도 충실합니다.
알핀 르노의 스포츠카 사업부인 ‘르노 스포트 테크놀로지(RST)’에 속해 있던 자동차 브랜드입니다. 포뮬러원(F1) 출전 경력은 물론이고 1978년 극한의 내구성을 다투는 레이싱 경기인 ‘르망 24시’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숱한 명차를 내놨습니다.
알핀은 경영난을 겪으며 1994년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만, 최근에는 르노가 이 브랜드를 다시 되살릴 것이라는 전망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습니다. 게다가 르노는 글로벌 주요 자동차업체들 중 가장 전기차에 집중하고 있죠. 자, 이쯤 되면 정말로 2015년에는 알핀의 전기차가 출시되는 게 아닐까 하는 기대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전기 스포츠카를 타고 미래 도시를 질주하는 일, 어쩌면 얼마 남지 않은 건 아닐까요.
이진석 기자 ge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