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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 기대 배신한 음악… 자우림 ‘멋대로’가 통했다

입력 | 2012-01-17 03:00:00

■ MBC ‘나는 가수다’ 세번째 명예졸업 비결




자우림은 방송 출연으로 부쩍 바빠진 가운데서도 앨범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이달 말 ‘나는 가수다’에서 선보인 음악을 모아 앨범을 내고 올해 안으로 정규 9집도 낼 예정이다. 왼쪽부터 구태훈, 김진만, 김윤아, 이선규. 사운드홀릭 제공

MBC ‘나는 가수다’(‘나가수’) 세 번째 명예졸업의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기대치가 높아진 청중은 더는 웬만한 고음 지르기와 변신에 감동 받지 않았다.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며 팔짱을 낀 500여 명의 평가단 앞에서 가창력 있다는 가수들이 번번이 탈락의 쓴잔을 들이켰다. 1기 멤버인 박정현 김범수의 명예졸업 뒤 또 다른 명예졸업자 ‘자우림’이 나오기까지 무려 5개월이 걸렸다. 국내에서 드문 ‘혼성 모던 록 밴드’가 관객을 움직일 수 있었던 비결은 뭐였을까.

13일 동아일보 사옥에서 만난 자우림 멤버 4명(보컬 김윤아, 기타 이선규, 베이스 김진만, 드럼 구태훈)은 “(순위에 연연해하기보단) 그저 우리 식대로 노래했을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잘난 척처럼 들릴 수 있는 답변이지만 그 ‘무심함’이 지난 15년간 자우림이 사랑받아온 이유다.

“우리는 늘 ‘팬들의 기대를 배신하는 밴드, 과거와는 다른 음악을 보여주는 밴드가 되겠다’고 말해왔어요. 나가수에서도 마찬가지였고요.”

‘나가수’에서 자우림은 ‘실험담당’이었다. 첫 번째 ‘고래사냥’으로 1위에 오른 뒤 한동안 하위권을 맴돌면서도 고집스럽게 다음 실험을 이어갔다. 조용필의 ‘꿈’을 부를 때는 사물놀이 패를 등장시켰고, 댄스곡인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는 주술을 행하듯 몽환적인 분위기로, 김범수의 발라드 ‘하루’는 탱고 등 남미음악을 가미해 편곡했다.

뚝심 있게 실험을 이어갔던 이유로 “대중의 기호를 예측할 수 있는 깜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대중도 어느새 “순위보단 우리의 색깔을 드러내는 게 더 중요하다”는 자우림의 고집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14번의 경연에서 자우림은 1등부터 7등까지에 골고루 모두 2번씩 올랐다.

이들에겐 ‘나가수’ 출연 자체가 실험이었다. 처음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땐 “음악에 순위를 매기는 건 코미디”라면서 외면했다. 반신반의하며 시작했지만 끝나고 보니 얻은 게 더 많다. 얼마 전 끝난 전국투어 콘서트에 50, 60대 팬들이 야광봉을 들고 찾아왔을 때는 뭉클한 감동을 느꼈다. 자기들끼리만 어울리던 멤버들이 동료 가수들과 친해지는 계기도 됐다.

“‘나가수’ 출연 가수들끼리는 경쟁자라기보다 서로가 MBC의 공동 피해자라는 느낌이 있죠.(웃음) 그 덕분에 똘똘 뭉치게 됐고요.”

15년의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밴드도 많은 것이 변했다. 4명 멤버 중 3명이 결혼을 해 가정이 생겼고 최근에는 예능 프로그램 출연 횟수도 늘었다. 과거 녹음실에서 밤을 새웠던 멤버들이 이제는 매일 오전 11시면 육아와 가사를 병행하는 주부 김윤아의 집에 모여 음악작업을 한다. 생활 패턴은 바뀌었지만 바지런함은 여전하다. 매년 한 개 이상의 앨범을 낸 이들은 이달 말이면 나가수에서 했던 음악들을 모아 앨범을 내고, 올해 안에 9집도 발매할 예정이다. 앞으로도 이들의 실험은 계속될까.

“계속 음악을 만들고 앨범을 내야겠죠. 우리가 듣고 싶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 계속 해보는 거죠.” 무심하지만 미더운 답변이 자우림다웠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문혜빈 인턴기자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