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 SAIS 초빙연구원
‘Occupy시위’ 불만표출 넘어서
그동안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문제점이 지적되었음에도 높은 효율성으로 사회주의와의 체제 경쟁에서 승리하며 세계 경제 성장을 주도해왔다. 하지만 성장 활력이 약화되고 국가 간, 국가 내 소득 격차가 확대되면서 시장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는 더는 그대로 존속하기 어려운 한계적 상황에 이르고 있다. 자본주의 경제의 지속 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선순환 구조’가 약화되고 있는 까닭이다. 우선 금세기 자본주의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추앙받던 세계 금융체제가 과도한 부채 발행으로 제 기능을 상실해 버렸다. 금융 불안은 실물 경기 침체로 이어져 또다시 금융 부실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늘 구원 투수로 나섰던 정부 재정도 막대한 적자로 인해 더는 수호신 역할이 불가능해졌다. 그 결과 자본주의 체제는 오히려 금융 부실, 실물 경기 침체, 재정 악화, 금융 부실 심화라는 악순환 고리가 형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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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시장 원리가 아닌 정치사회 정서를 바탕으로 기업을 운영하다가는 기업마저 경쟁력을 상실하고 부실의 깊은 늪에 빠져들게 된다는 점이다. 기업은 자본주의 체제 약화로 가중되는 부담을 감당하면서 자신의 생존 기반을 확충해야 하는 이중고를 짊어지게 됐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근간이 기업이라는 점에서 기업의 활로 찾기는 자본주의 재생의 유일한 희망이기도 하다. 세계 각국의 정부와 정치권은 부채와 분배 같은 과거 문제에 사로잡혀 미래 성장을 도모할 여력과 상상력을 상실하고 있어 더욱 그렇다.
기업도 불평등 해결에 앞장서야
지난 5년 동안 시장 자본주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기업의 역할을 연구해온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 연구팀 등은 기업에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변신을 권고했다. 우선 자본주의 위기 상황을 직시하라고 경고한다. 이제까지 당연히 주어진 것으로 여겼던 시장 체제가 훼손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이를 막기 위한 기업의 책무를 주요한 경영 전략의 하나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업은 한 국가와 세계의 선한 기업 시민(corporate citizens)으로서 빈곤, 환경오염, 이민근로자 등의 경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자발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와 함께 기업의 지속 성장을 위한 내부 혁신과 외부 협력을 강화할 것을 강조한다. 첫째, 기업은 다양한 위기 상황에서 새로운 기회를 포착해 경제 활력을 살리는 선도적 기능을 다해야 한다. 한 예로 저성장과 빈부 격차 속에서 중·저소득 계층을 위한 제품과 서비스 개발은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 둘째, 기업의 내부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일이다. 기업의 창조성과 생산성을 높이고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경영 혁신을 일상화해야 한다. 셋째, 기업 간 협력과 함께 정부, 세계 경제기구들과 유기적 공조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자본주의를 위협하는 또 다른 요인인 기후 변화, 정보 보안, 무역 규제 등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비용 부담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이 자본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도적 역할을 하려면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특히 한국의 경우 시장 자본주의가 여전히 한국 경제 성장의 기본 토대라는 데 정치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기업의 사회적 기여를 강요하기보다는 이를 위한 제도적 유인책을 만들어야 한다. 기업이 살아야 세계 자본주의가 회복되고 한국 경제도 지속 성장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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