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b책/김사과 지음/168쪽·9000원·창비
바닷가의 한 지방 도시에 사는 여중생인 ‘나’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사는 도시는 우스웠다. 왜냐하면 서울을 흉내 내는 도시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서울 자동차에서 차를 사고 서울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안경은 서울 안경원에서 사고 여행은 서울 여행사를 통해서 갔다. 우스워지지 않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은 도시를 떠나 서울로 갔다.”
중학교 같은 반 학생인 ‘나’와 ‘b’는 아이들로부터 집단 따돌림을 당한다. ‘나’는 먼저 당했고, ‘b’는 ‘나’가 학교를 나오지 않자 ‘대체재’가 된다. 불치병에 걸린 동생 때문에 집안이 어려워진 ‘b’는 이렇게 처지를 비관한다. “나한테 십억만 있으면 동생은 안 죽고 엄마는 공장에 안 나가고 나는 의사가 될 수 있는데, 하지만 나에겐 천 원밖에 없으니까 동생은 죽을 거고 엄마는 계속 공장에 나갈 거고 앞으로 나는 쓰레기가 되어야지.”
2005년 ‘영이’로 창비 신인소설상을 받으며 등단한 작가는 ‘미나’ ‘풀이 눕는다’ 등을 통해 10대들의 그늘지고 불투명한 삶을 꾸준히 조명해왔다. 스타카토처럼 딱딱 끊어 내뱉는 단문들로 표현한 폭력의 현장들은 그 무미건조한 문체 때문에 더욱 섬뜩하게 느껴진다. 다만 개성 강한 문체로 독특한 시공간을 창출해낸 것에 비해 결말은 너무 ‘정석적’이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