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는 재료 맛이야!”… 한밤 불호령에 ‘성게알 찾아 삼만리’
일러스트레이션 최남진 namjin@donga.com
박효남 밀레니엄 서울힐튼 총주방장
나를 그저 그런 요리사에서 요리에 인생을 걸게 만든 사람으로 바꾼 인물은 다름 아닌 벽안의 오스트리아인 서울힐튼 총주방장 하우스버거 씨였다. 호텔 총주방장이 어떤 인물일까? 치열한 호텔 주방세계에서 산전수전 겪으며 익힌 실무 경험에다 이론까지 겸비한 인물이 바로 글로벌 체인호텔의 총주방장 자리다.
처음에는 총주방장 하우스버거 씨가 나를 싫어하는 줄 알았다. 절대 웃는 법이 없었고 말투는 퉁명스러웠다. 또 유독 나에게 왜 그렇게 일감을 많이 주는지…. 동료 요리사들에게 시켜도 될 것 같은 소소한 일감까지 하우스버거 씨는 내게 지시했다. 약속된 시간에 음식이 제공돼야 하는 게 생명인 VIP 연회행사에서 조리과정이 아주 조금, 기억하건대 3∼5분 늦어졌을 뿐인데 연회주방에서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물이 나도록 호통을 치신 일이 생각난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요리뿐이었다. 그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재료에 집착했다. 요리에 제대로 미친 사람이었다. 나와 얼마간의 친분이 쌓인 뒤에 그는 내게 퇴임 후의 계획에 대해 고백을 한 적이 있다. 그것은 바로 고향 오스트리아 빈에 가서 테이블 4, 5개 정도의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것이었다. 그는 은퇴한 뒤 계획을 실현했다. 몇 해 전 나는 빈에 있는 그의 식당을 방문했다. 식당이 자리를 잡아서인지 손님들이 꽤 북적였다. 그는 “지금이 내 인생의 전성기”라고 말문을 열었다. 식당 문을 연 초기에는 손님 구경하는 일 없이 영업을 마치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어느 날 30대 후반의 젊은 부부가 저녁 나절 예약 없이 식당 문을 열더니 자리에 앉더란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여자가 장님이었다. 남편은 아내를 위해 메뉴판에 있는 음식 하나하나를 정성껏 설명해 주었고 아내는 귀를 쫑긋 세우며 남편의 설명을 들었다. 하우스버거 씨는 그들이 주문한 음식을 정성껏 만들어 내어주었고, 부부는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남김없이 음식을 먹었다. 식당 문을 나서기 전 부부는 “참 맛있는 음식이었습니다”라고 짧게 인사를 하고 떠났다고 한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하우스버거 씨는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꼈다고 했다. “그래, 내 직업은 정말로 위대한 거야!”라면서.
그런 그가 재작년 심장마비로 생을 달리했다. 스승을 잃은 제자의 심정을 어찌 내 짧은 글재주로 표현할 수 있으랴! 스승이 남긴 위대한 가르침을 가슴속에 새기며 오늘도 난 호텔을 찾는 고객을 위해 묵묵히 음식을 만들고 있다.
박효남 밀레니엄 서울힐튼 총주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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