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장기계획 수립
산업은행 고위 관계자는 8일 장기계획 수립 배경에 대해 “몇 년마다 경영진이 바뀌는 데다 민영화 논란에 휩쓸리다 보니 향후 10년간 은행이 갈 방향이 담긴 성장 방안을 마련하지 못했다”며 “장기계획을 수립하면 최고경영자(CEO)가 바뀌어도 은행 경영의 큰 틀이 유지돼 혼란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산은금융지주가 국내 시장에서의 덩치를 키우는 데 주력하는 기존 시중은행과 다른 전략을 채택하기로 함에 따라 국내 은행업계의 판도에도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 가장 이상적 모델이 JP모건
19세기 중반 상업은행(CB)으로 출발한 JP모건은 월가 금융회사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녔다. 2000년 체이스맨해튼은행, 2004년 뱅크원과 합병하며 미국 소매금융 시장의 강자로 떠올랐고 2008년 금융위기 직후 대대적으로 사세를 확장했다.
JP모건은 리먼브러더스와 메릴린치 등 유수의 투자은행(IB)들이 서브프라임 투자를 비롯한 고수익 사업에 매진할 때 이 유행에 휩쓸리지 않았다. 그 대신 서브프라임 광풍이 지나가자 싼값에 알짜 IB 및 모기지 회사를 사들였다. JP모건은 2009년 3월 투자은행 베어스턴스, 같은 해 9월 모기지회사 워싱턴 뮤추얼을 인수하며 월가 CIB 최강자로 위상을 굳혔다. 고수익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은행 본업에다 충실하다 기회가 오자 적극적으로 인수합병(M&A)을 시도한 게 산은지주에 매력적으로 비친 셈이다.
특히 같은 CIB 모델을 채택했던 씨티가 금융위기 와중 미국 1위 금융회사 자리를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내주면서 JP모건체이스의 위상이 더욱 올라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성공적인 벤치마킹을 위해 산은 고위 임원들은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 작가 론 처노가 지은 ‘금융제국 JP모건(원제 The House of Morgan)’을 열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 ‘국내 경쟁에 연연 않겠다’
그는 산은지주가 M&A를 추진하는 건 국내 경쟁이 아니라 적극적인 해외 진출을 모색하기 위한 전초 단계라고 거듭 강조했다. 최근 시중은행들이 산업은행의 지점 개설 및 수신고 확대 움직임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현재 산은의 지점이 57개이고 1년에 최대 20개 정도 늘릴 수 있는데 1000개 내외의 지점을 갖고 있는 4대 은행과 경쟁이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해외 사업은 위험도가 크기 때문에 특히 초기 위험을 감당해낼 수 있는 완충 장치가 필요하며 그게 자국 내의 튼튼한 기반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시중은행이 쉽게 따라할 수 없는 산은지주만의 2대 강점은 사회간접자본(SOC) 프로젝트 파이낸싱과 기업 구조조정 금융이다. 이 관계자는 특히 국내 시장의 85%를 점유할 정도로 독보적인 강점을 지닌 SOC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앞세워 해외 진출에 나서겠다고 설명했다.
특히 최근 세계에서 유일하게 고성장을 이어가는 아시아 각국의 인프라 건설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 산업은행의 해외 진출에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HSBC, 바클레이스 등 유럽 대형 금융회사들이 재정위기로 타격받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산은이 아시아 인프라 금융시장에 진출하는 데 최적기”라고 강조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