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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이 한줄]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가족이라 하더라도

입력 | 2011-07-23 03:00:00


《 “가족이란 건, 대체 뭘까?”

―일본 TV드라마 ‘마루모의 규칙(2011년)’중에서

 
엄마는 도망갔고, 아빠는 죽었다. 천생 고아 두 명이 주인공이다. 여기에 문구회사 고객 불만 처리 부서에서 근무하는, 둥글둥글 아저씨 스타일로 생긴 30대 노총각이 나온다. 게다가 ‘말하는 강아지’라는 무리한 설정까지…. 유치하거나 신파거나, 둘 중 하나 아닐까? 내게 ‘마루모의 규칙’은 선뜻 손이 가지 않는 드라마였다.

하지만 안 볼 수가 없었다. 시청률이 20%가 넘었다느니, 아역 두 명이 일본 버라이어티 쇼 중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스마스마(SMAP X SMAP)’에 동반 출연했다느니 등등 온갖 뉴스가 속속 들려오는 게 아닌가. 트렌드에 뒤질 수 없다는 생각에 호기심이 발동하고 말았다.

“상대방을 아무리 잘 안다고 해도 (그가) 사실은 무슨 생각을 하고 뭘 느끼는지 마음속까지는 모른다. 진짜 가족이라 해도 그럴 거다. 가족이란 건, 대체 뭘까.”

다행히 이런 대사로 시작하는 드라마는 유치하지 않았다. 신파도 아니었다. 이야기는 이렇다. 주인공 마루모는 고교시절 야구부 친구 사사쿠라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전해 듣는다. 친구는 이란성 쌍둥이 남매인 가오루(누나)와 도모키(동생)를 남겼다. 친구가 마지막으로 바랐던 건 쌍둥이가 떨어지지 않고 함께 자라는 것. 빠듯한 형편 탓을 하며 둘을 따로 키울 궁리를 하는 친척들 대신 마루모는 쌍둥이를 맡는다. 쌍둥이에겐 길에서 발견한 말하는 강아지 무크까지 딸려 있다. 넷은 마루모의 허름한 하숙집에서 ‘동거’를 시작한다. ‘마루모의 규칙’은 말하자면 핏줄로 이어지지 않은 이들이 가족이 될 수 있는지 없는지, 즉 ‘가족의 규칙’을 따지는 드라마다.

초등학교 때 그런 적이 있었다. 가족 누군가에게 억울하고 속상한 일이 있었던 나는 며칠을 끙끙 고민하다(나는 극소심 트리플A형이다) 직접 말은 못하고 거실 현관문에 글을 하나 붙였다. “가족끼리도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을 합시다”라고.(물론 뼛속까지 ‘경상도 스피릿’이 깃들어 있는 가족들에겐 눈썹 하나 꿈틀대는 정도의 호응조차도 얻지 못했다.)

‘마루모의 규칙’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이제 막 같이 살게 된 세 사람이 소통하는 방법은 그저 솔직하게 말하는 것뿐이다. 자기 방을 청소해준 가오루와 도모키에게 엉뚱한 물건을 버렸다며 오히려 화를 낸 마루모는 뒤늦게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그리고 친구를 잃은 슬픔을 아빠를 여읜 쌍둥이들과 나눈다. 갖고 싶은 것, 원하는 것을 꾹 참는 어른스러운 가오루에게 마루모는 ‘어린이는 어린이답게’라는 규칙을 정해주며 솔직해지라고 말한다. 드라마의 마지막회에는 갓난아기였던 쌍둥이를 버리고 도망쳤던 엄마가 돌아와 쌍둥이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집에서 나와 혼자 살기 시작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다 보니 나도 부모님에게 사랑한다던가 미안하다던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어색해졌다. 10분 이상 통화하면 간지럽고, 사흘 이상 얼굴 보면 언성이 높아진다.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어려운 사이가 된 거다. 마루모는 쌍둥이를 키우기 시작하며 “그저 지켜봐주고 싶다”고 말한다. 그건 바꿔 말하면, 나 역시 상대가 날 지켜볼 수 있게 자신을 드러내보여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내가 정한 마루모의 최종 규칙.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가족이라 하더라도.

s9689478585@gmail.com

수세미
동아일보 기자. 이런 자기소개는 왠지 민망해서 두드러기 돋는 1인. 취향의 정글 속에서 원초적 즐거움에 기준을 둔 동물적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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