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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준 칼럼]정치·재벌·국민의 삼각관계

입력 | 2011-07-20 03:00:00


배인준 주필  

6·25전쟁 뒤인 1950년대 우리 정부는 “3남 2녀로 5명은 낳아야죠”라는 표어로 베이비붐을 이끌었다. 1960년대가 되자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로 표어가 딴 나라처럼 바뀌었다. 1970년대 표어는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였다. “자녀에게 가장 큰 선물은 동생입니다”라는 2000년대 표어는 저출산 타개의 몸부림이지만 효험이 별로다. 1983년 “둘도 많다”는 표어가 등장할 때만 해도 아이 울음소리 듣기 힘든 21세기를 원려(遠慮)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인구 문제처럼 다른 분야에서도 정책 환경은 끊임없이 변한다.

앨런 그린스펀은 경제정책에 대해 “한 이론이 10년 정도 맞는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1987년부터 2006년까지 장장 20년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지내며 ‘세계의 경제 대통령’이란 찬사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의 일부 정책은 부동산 거품을 부채질했고 그것이 금융위기의 한 원인이 됐다. 그는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신의 신념이 부분적으로 틀렸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경제와 복지 정책을 둘러싼 논란은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당장 미국에서는 정부지출 확대냐, 감축이냐를 놓고 버락 오바마 정부와 야당인 공화당이 몇 달째 대립하고 있다. 만약 2주 뒤인 내달 2일까지 타협하지 못하면 미국이 디폴트(채무상환 불이행)라는 재앙에 직면할 수도 있다.

모두 “국민 위한 정책” 외치지만

영미 간에도 국가 빚 문제의 해법이 엇갈린다. 영국은 긴축 정책에 무게를 싣고 있는 반면 오바마 미 정부는 세금 인상과 재정지출 확대를 고집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이코노미스트는 “두 나라는 경제이론의 살아있는 실험장”이라고 말한다.

한국이야말로 경제와 복지 정책의 아슬아슬한 실험장이 되고 있다. 민주당은 작년 6·2 지방선거 때 초중등학생 전면 무상급식 공약으로 표심을 자극했다. 반(反)한나라당 정권을 만들겠다는 여러 좌파 정당은 교육 의료 등에서 더 급진적인 무상 카드를 들고 나올 채비를 하고 있다. 한나라당도 대학생 등록금 문제를 비롯해 복지 확대 경쟁에 뛰어들었다. 여야(與野) 가릴 것 없이 이익 많이 내고 계열사 많이 늘리는 재벌을 때리며 활빈당처럼 행동하지만 이들이야말로 오로지 선거 승리라는 이익 쟁탈전에 매몰돼 있다.

세계의 어떤 정당과 정권도 국민을 위한 정책을 표방하지 않은 사례가 없다. 그리스를 빚더미 위에 올려놓은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전 정부도 ‘국민을 위한’ 복지 정책으로 오늘의 국가 재앙을 잉태했다. 북한 김씨 왕조는 일찍이 무상배급 무상교육 무상치료라는 3대 무상정책을 내걸고 지상 낙원을 선전했다. 그러나 결말은 경제 파탄, 민생 지옥에 세계를 향한 앵벌이 행각이다.

우리나라가 불과 반세기 만에 지구촌 최빈국에서 10위권 경제국가로 올라선 것은 북한과 달리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선택했고 개방경제를 통해 세계화의 최대 수혜국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화는 무역과 투자 등의 국경 없는 경제를 압축한 말이다.

문제는 세계화, 국민 내부의 교육과 테크놀로지 격차, 자본권력의 확대 등으로 인해 빈부 격차가 커졌다는 점이다. 그 반동으로 자본주의와 세계화 자체를 부정한다면 국민경제의 급속한 추락을 피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서민은 그야말로 출구가 없어진다.

반면에 자본주의와 세계화의 수혜를 실감하지 못하는 국민이 자꾸 늘어난다면 체제에 대한 도전이 확산될 수 있다. 체제와 제도의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리는 대기업과 부유층이 그 이익을 더욱더 적극적으로 나눌 준비를 할 때가 됐다. 자신들의 창의적 혁신과 남다른 노력 덕이 컸다고 하더라도 그런 도전을 가능하게 해준 것 또한 체제요 제도라는 점에 감사해야 한다.

한편으로 정치권과 다수 국민은 대기업과 부유층을 감정적이고 폭력적으로 공격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길이 아님을 공감할 필요가 있다. 세계적으로 ‘고용 없는 성장’이 난제가 되고 있지만 국내에서 그래도 가장 좋은 일자리를 가장 많이 만들고 있는 것은 대기업들이다.

빈부의 不和 조장은 해법 아니다

그리고 이들 기업과 그 종사자들이 창출하는 부가가치와 납세능력과 구매력이 우리 경제와 민생을 굴러가게 하는 중요한 동력임을 부정할 수 없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이겨내는데도 정부보다 기업들이 더 큰 버팀목이 됐다.

민생 개선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하면서 일시적으로 민심에 영합하려고 재벌 때리기 경쟁을 하는 정치권에 대해 오히려 국민이 냉정할 때다. 빈부의 불화를 부추기는 것은 아무런 해법도 되지 못한다. 깨어있고 멀리 바라보는 이성적 국민이라야 나라 곳간과 자식세대까지의 삶을 지킬 수 있다.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