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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의 도시서 실버타운으로 ‘뉴욕 개조’

입력 | 2011-07-12 03:00:00

스쿨버스 낮엔 노인이 이용… 곳곳에 ‘노인친화 상점’
고령 인구 늘자 도시 정비… 다른 대도시들도 동참




미국 뉴욕 이스트할렘 지역에 사는 제니 로드리게즈 씨(69·여)는 장을 보는 게 불편했다.히스패닉계 저소득층 인구가 많이 모여 사는 이곳엔 널찍한 슈퍼마켓이 없기 때문. 카트를 밀고 동네 작은 가게로 장을 보러 가야 한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스쿨버스를 이용해 편하게 대형 슈퍼마켓에 갈 수 있게 됐다. 이 지역 스쿨버스는 학생을 실어 나르지 않는 시간에 노인들이 자주 찾는 슈퍼마켓, 병원, 공원 등을 오가는 서비스를 제공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런 변화는 이스트할렘이 뉴욕 시 지정 ‘노인 친화 구역(age-friendly district)’이 되면서부터 찾아오기 시작했다.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노년에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도시를 노인 친화적으로 리모델링하는 움직임이 미국 곳곳에서 일고 있다고 AP통신이 10일 보도했다. 젊은 직장인 위주로 마련된 도시 인프라를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위해 고쳐 나가고 있는 것. 미국에서는 2050년이 되면 인구 5명 중 1명은 60세 이상 노인이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85세 이상의 노인은 지난 10년 동안 30% 이상 늘어났다.

과거 노년층이 교외로 생활 터전을 옮겨갔던 것과는 달리 베이비붐 세대는 나이가 들어도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도시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베이비붐 세대의 ‘실버 쓰나미’가 앞으로 10∼20년간 미국의 도시 환경을 바꿔 놓을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에서 노인친화 환경 구축에 가장 열성인 도시로는 뉴욕, 애틀랜타, 필라델피아, 포틀랜드 등이 꼽히고 있다. 뉴욕 시에서는 이스트할렘, 어퍼 웨스트사이드, 베드퍼드스투베산트 등 세 곳이 노인친화 구역으로 설정돼 있다. 노인 밀집 동네의 신호등은 보행자 녹색불이 다른 곳보다 10초 정도 더 오래 켜져 있다. 이 구역 버스정류장 2700여 곳은 모두 노인용 의자를 구비해두고 있다. 택시들은 노인과 장애인들이 편히 타고 내릴 수 있도록 차체가 큰 자동차로 바꿔 가고 있다.

노인친화 서비스는 처음에는 공공시설 위주로 시작했지만 상점들도 동참하고 있다. 노인을 위한 서비스를 갖추는 것이 매출 상승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노인친화 상점’이라고 창문에 크게 써 붙인 가게들은 노인들이 쉬어 갈 수 있도록 가게 앞에 간이의자를 마련해두고 있다. 또 상점들은 노인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큰 글씨로 된 가격표와 안내문을 붙여둔다.

애틀랜타 시 주택당국은 노인 주거용 아파트에 완만한 경사로를 만들고 경사로 입구에 버스 정류장을 설치하고 있다. 또 노인들이 자주 찾는 도서관을 노인센터나 노인용 아파트, 버스 정류장 근처에 만들고 있다. 필라델피아는 공원에서 자전거를 탈 수 없는 구역을 따로 만들어 노인들이 편하게 공원을 산책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노인 아파트에 완만한 경사로를 확보하고 복도를 넓게 만들도록 했다.

노화 전문가인 앤드루 샬락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교수는 “도시환경 개선의 핵심은 노인들을 고립감으로부터 탈출시키는 것”이라며 “경제가 더 좋아지면 도시 인프라를 노인친화적으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더 활발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