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형 범죄”… “상습범” 70분 공방
○ 상습절도 vs 특수절도
“9번이나 절도 전과가 있는 백 씨는 출소하자마자 남의 물건을 또 훔쳤습니다. 수법도 똑같습니다. 생활이 어렵다고 모두가 도둑질을 하지는 않습니다. 배심원 여러분 현명한 판단으로 우리 사회의 정의를 세우는 데 힘을 보태주시기 바랍니다(검찰).”
이번에는 변호인이 검찰 주장을 반박했다. “백 씨가 동종 전과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에는 정말 돈 없이 노숙을 하다 저지른 우발적 범행입니다.”
백 씨는 지난해 10월 서울 성동구 행당동 길가에 만취해 누워있던 박모 씨를 발견하고 평소 알고 지내던 김모 씨(38)를 불러 박 씨의 지갑을 훔치도록 했다. 백 씨는 훔친 돈 8만 원 중 3만 원을 가졌다. 당시는 백 씨가 상습절도죄로 3년 6개월을 복역하고 9월 말 출소해 20일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백 씨는 최후진술에서 “미싱사로 취직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고, 누나에게 빌린 돈도 다 써서 저지른 것이지 상습범은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일부 그림자배심원들은 백 씨의 말에 공감한 듯 고개를 끄덕였으며 일부는 다시 한번 판단하려는 듯 자료를 꼼꼼히 살펴보기도 했다.
○ 엇갈린 판결
“너무 가난해서 우발적으로 저지른 것 같은데 상습범이라고 보긴 힘들지 않나요.”
“같은 전과가 너무 많아요. 공범까지 동원했잖아요. 법을 엄격히 적용해야 합니다.”
기자가 포함된 조는 70분이나 열띤 공방을 벌였지만 의견이 엇갈려 합의에 이를 수 없었다. 결국 다수결에 들어가 3 대 2로 형법상 특수절도로 판단했다. 형량은 징역 2년과 1년 6개월이 각각 2명, 1년이 1명이었다.
그러나 일반 배심원단과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배심원단은 만장일치로 특가법상 상습절도 혐의를 유죄로 건의했다. 다만 피해 금액이 적은 점 등을 고려해 형량을 징역 4년으로 건의했다. 재판부도 이를 존중해 “범행 경위가 우발적이라고 볼 수 없다”며 같은 취지로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 그림자 배심원(shadow jury) ::
국민참여재판에서의 일반 배심원과 마찬가지로 재판 과정을 모두 지켜본 뒤 피고인의 유무죄를 가리고 형량을 정한다. 그러나 일반 배심원과 달리 재판부에 평의, 평결 결과를 건의하지 않고 재판 결과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림자 배심원을 체험하고 싶은 사람은 대법원 홈페이지(www.scourt.go.kr)에서 신청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