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그리스의 장기채권등급(국가신용등급)을 B에서 CCC로 한꺼번에 세 단계 낮췄다. 국가부채의 ‘지급 불능 가능성이 있음’을 뜻하는 CCC 등급은 디폴트(채무불이행)에 해당하는 D등급보다 불과 4단계 높다. S&P는 “그리스가 디폴트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서구 문명의 요람인 그리스가 세계에서 신용등급이 가장 낮은 국가로 전락하면서 국가부도 위기에 몰려 있다.
2001년 유로(유럽 단일화폐)가 통용되는 유로존에 가입한 그리스는 싼 금리의 유로가 쏟아져 들어오자 정부부터 가계까지 돈을 흥청망청 썼다. 임금이 오르고 집값에 거품이 커졌다. 정부는 비대해지고 지출이 늘었다. 좌파 정당인 사회당이 1981년 집권한 이후 9번의 선거 중 6번을 이긴 이 나라에서는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 정치와 정책이 판을 쳤다. 사회 지도층, 공무원, 노동자, 일반 국민 할 것 없이 부패와 탈세의 늪에 빠졌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로 집값 거품이 꺼지면서 그리스 경제의 진면목이 드러났다. 정부는 방만한 공공부문과 복지 혜택을 유지하느라 국내총생산(GDP)의 110%를 넘는 국가 채무를 졌다. 결국 그리스는 지난해 5월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 첫 유럽 국가로 전락해 1100억 유로(약 172조 원)를 빌렸다.
그리스의 추락은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여야 정치권이 국부(國富) 확대와 재정 건전화는 뒷전인 채 나라 곳간을 비우는 경쟁에 몰두하고 있는 한국에도 경종을 울린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어제 “기업이든 국가든 개인이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빚이 많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바로 우리의 얘기로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정부라도 중심을 잡고 국민을 잘 설득해야 한다. 경제 위기에 대처하는 최후의 보루인 재정은 한 번 무너지면 다시 일으켜 세우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