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비얀 빌딩/알라 알아스와니 지음·김능우 옮김/392쪽·1만3000원·을유문화사
소설 속에는 극명한 빈부 격차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집트 빈민촌 아이들. 동아일보DB(오른쪽)
치과의사이자 소설가로 반무바라크 운동에 나섰던 저자는 이 소설에서 무바라크 정권의 부패한 정치 현실, 극심한 빈부·계층 격차에 놓인 이집트 사회를 생생하게 고발한다. 2002년 출간돼 20여 개국에 번역됐고 바슈라힐 아랍 소설상, 독일 코부르거 뤼케르트상 등을 받기도 했다.
소설은 1990년대 초반 카이로 중심가에 위치한 10층짜리 아파트 건물인 야쿠비얀 빌딩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1934년 건축 당시에는 고위 관리나 부유한 상공인들을 위한 아파트였지만 도시 외곽에 신흥 부촌이 들어서자 이 건물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인간 시장’으로 변했다. 건물 안에는 주색잡기에 몰두하는 노신사의 사무실, 성공한 사업가가 마련한 정부(情婦)의 거처 등이 있고 옥상에는 도시 빈민들이 다닥다닥 붙어 산다.
작가가 이슬람 혁명을 풀어놓는 중심에는 문지기의 아들 타하가 있다. 그는 수재였고 경찰대학 최종 면접까지 갔지만 야쿠비얀 빌딩 문지기의 아들이란 이유로 떨어진다. 격분한 타하는 대통령에게 호소문을 올리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결국 일반 대학에 들어간 그는 반정부 시위를 하는 이슬람주의 집단에 끌리게 되고, 결국 테러 작전 중 목숨을 잃는다.
그의 정신적 스승은 이렇게 설파한다. “이슬람과 민주주의는 결코 함께할 수 없는 상극입니다. 민주주의란 스스로 자신들을 다스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슬람에는 하나님의 통치 외에는 없습니다.”
소설 속에는 극명한 빈부 격차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집트 빈민촌 아이들. 동아일보DB(오른쪽)
간간이 이집트의 미래 방향을 제시하는 정치적인 문구들이 나오지만 작품의 매력은 다양한 이집트인의 삶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데 있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부사이나는 애인을 버리고 몸을 팔기 시작하며, 동성애자이면서 신문편집장인 하팀 라쉬드는 군인 애인의 사랑을 얻기 위해 전력을 다하지만 실패한다. 마약을 팔며 큰 부자가 된 핫즈 앗잠은 고위층에 뇌물을 건네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밑바닥에서 생활하는 아바스카룬, 말라크 형제는 부자를 등쳐 돈을 빼앗을 기회만 노린다. 콧수염을 기른 남자와 히잡을 쓴 여성 등 평면적으로 인식돼 왔던 이집트인들의 모습이 입체적으로 살아난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