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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이 한줄]일본 드라마 ‘마더’

입력 | 2011-06-04 03:00:00

좋은 것만 계속 생각해… 그게 용기를 가져올거야




“선생님 좋은 거 보여줄게요. 내 보물, ‘좋아하는 것’ 노트.”

대사가 이어진다. “회전의자. 구부러진 비탈길. 목욕탕에서 나는 소리. 고양이랑 눈이 마주쳤을 때. 스즈가 해바라기 씨를 먹을 때. 눈 밟는 소리. 저녁 하늘의 구름. 크림소다.” 아이는 덧붙인다. “좋은 것만 쓰고 싫어하는 건 쓰면 안 돼. 싫어하는 건 생각하면 안 돼. 좋아하는 것만 계속 생각해야 하는 거예요.”

2009년 방영된 일본 드라마 ‘마더’의 한 장면이다. 나오는 임시직 교사이자 철새 연구가다. 그는 자신이 잠시 담임을 맡았던 학생 레나가 친엄마에게 학대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레나를 유괴해 엄마가 될 결심을 한다.

나오가 처음부터 레나를 사랑했던 건 아니다. 레나도 처음부터 나오를 엄마로 따르진 않았다. 둘의 유대는 만나고 나서 시간이 꽤 흐른 뒤, 이 대사가 나오는 카페 장면에서 시작된다.

수없이 상처받은 아이가 너무나 스스럼없이 던지는 한 마디.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며, 자기가 누구인지를 나오와 함께 공유한다. 이런 공유야말로 사람과 사람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힘이다. 드라마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담백하게 담아냈다.

해마다 여름이 다가오면 고민이 시작된다. 가족, 친구 중에 유독 여름 태생이 많다. 당장 생각나는 사람만 꼽아도 줄잡아 일고여덟 명. 험난한 ‘선물의 계절’ 5월을 넘자마자 또다시 뭘 선물할지 머리를 짜내야 한다.

선물 고르기가 쉽지 않은 건 거절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내가 고른 선물을 싫어하면 어떡하지?’란 걱정. 나만 그런 건 아닌 모양이다. 언젠가 책을 선물하는 건 정말 용감한 일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자신의 지적 수준과 취향 등 모든 걸 드러내기 때문이다.

선물이란 내 일부를 상대에게 보이고 공유하는 일이다. 쉬울 리가 없다. 나이를 먹을수록 아끼는 사람들을 위해 선물 고르는 일은 더 어려워진다. 타인이 나의 무엇인가를 싫어했던 기억, 말하자면 거절당했던 경험이 쌓였기 때문이다. 또다시 거절 당할까봐 겁이 많아진다. 지난번이랑 비슷하면 지루하다 핀잔 들을까, 이런 내 취향을 보여주면 뭐라고 하지 않을까….

고민 끝에 적당히 가격을 맞춰 사거나 상품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선물을 줄 때면 안 주느니만 못한 기분이 든다. 나를 보이고 나누는, 선물의 진짜 기능이자 진정한 스릴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용감한 소녀의 ‘좋아하는 것’ 노트를 보며 반성을 한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제 엄마에게 이유도 없이 두들겨 맞고, 혹독한 홋카이도의 겨울에 거리로 내쫓기는 처지다. 수없이 거절당해서 상처투성이인데도 여전히 누군가에게 손 내밀어 나를 보여줄 수 있다니, 웬만한 어른은 할 수 없는 일이다.

선물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들 하지만 누군가가 내게 주는 마음이 무조건 반갑지는 않다. 그런 만큼 선물은 잘 주는 것만큼이나 잘 받는 것도 중요하다. 또 상대를 위해 나의 무엇을 꺼내 보일지 고민하고 애달파하는 일은, 결과야 어떻든 나를 알고 또 다듬는 과정이기도 하다. 일단 용기를 낼 것. 올해 여름을 위한 레나의 충고다.

s9689478585@gmail.com  
수세미
동아일보 기자. 이런 자기소개는 왠지 민망해서 두드러기 돋는 1인. 취향의 정글 속에서 원초적 즐거움에 기준을 둔 동물적 삶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