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희 논설위원
‘전력 없는 삶’ 시험대 될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시간이 갈수록 심각성이 더해지는 느낌이다. 원전 1∼3호기 모두 초기에 원전 사고에서 가장 심각한 단계인 노심용융(멜트다운)이 진행됐던 사실이 밝혀졌다. 사고처리 과정에서 간 나오토 민주당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 부재(不在), 도쿄전력의 사고 은폐 의혹도 끝없이 제기됐다. 일본에서 사고 초기만 해도 반반이던 여론이 원전 반대 쪽으로 기울어지는 것 같다. 생활이 불편해져도, 전기요금이 올라가도 미래세대를 위해 원전을 용인할 수는 없다는 여론이 높아지자 일본 정부는 멀쩡한 하마오카 원전 가동을 중단하면서 다소 급진적 탈핵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일본의 ‘원전 없는 삶’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 것인지도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지난해 한국과 일본은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최악의 무더위를 겪었다. 세계 최고령 국가인 일본에선 지난해 열사병에 따른 사망자가 1600명으로 예년의 8배를 넘었다. 올해도 지난해 못지않은 무더위가 올 것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올여름 가동될 일본 원전은 54기 가운데 12기에 불과하다. 후쿠시마 원전 등 15기가 가동이 중단됐고 27기는 정기점검이 계획돼 있다.
의료시스템이 잘 갖춰진 일본이지만 올여름 전력 부족 상태에서 사망률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진대사가 원활하지 않은 노인들에게 찜통더위는 치명적이다. 폭염 때문에 생산성도 크게 떨어질 것이다. 원전 없는 한여름을 보낸 뒤 원전에 대한 일본 여론이 어떻게 바뀔지 궁금해진다.
일본 전력난을 바라보는 우리도 걱정스럽다. 정부가 원전 안전성 강화대책을 발표한 이후에도 안전성에 대한 의구심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원전 반대여론이 높아져 원전의 계속운전과 신규 원전의 건설을 낙관하기 어렵게 됐다. 심지어 과학벨트 선정에서 탈락한 지자체장들이 중앙정부에 자기 지역 내에 있는 원전과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가동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을 정도다.
원전 반대하며 에어컨 사들이는 모순
지난여름 살인적 더위에 전력 수요가 피크를 기록하며 전기 공급이 중단되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여러 번 발생했다. 한쪽에선 원전 주변지역 주민과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원전 반대운동이 한창인데 다른 쪽에선 에어컨이 불티나게 팔린다. 이대로 가면 올여름 우리나라의 전력 수요는 또다시 최고치를 경신할 것이다. 나는 원전이 있는 일부 지자체장의 요청대로 원전 몇 개쯤 가동을 중단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 국민과 경제가 한여름 전력 부족을 감내할 수 있다면 뭐 하러 원자력을 고집하겠는가. 오히려 에너지 저소비사회로의 진입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의 참을성은 일본인에 못 미친다. 올여름 일본은 여러모로 원전의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