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중 김충현 선생 2006년 별세 뒤“거장 족적 담긴 비문 짓기 어렵다”
일중 선생 묘비 뒷면과 옆면에 적힌 비문 일부. 네 면에 적힌 한자와 한글은 각각 예서체와 훈민정음판본체로 모두 3000여 자에 이른다.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최완수 연구실장이 비문을 짓는 데 석 달이 걸렸다. 일중선생기념사업회 제공
일중은 2006년 11월 19일 향년 85세로 별세했다. 그가 대표로 있던 백악미술관과 문하생들이 모여 발족한 기념사업회가 본격적으로 묘비 제작에 들어간 것은 4년 전인 2007년. 사업회는 장례를 치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비문 글자를 쓸 서예가로 고인의 수제자인 초정 권창륜 씨(68)를 선정했다.
문제는 비문 문장이었다. 사업회는 일중과 오랜 시간을 함께한 지인들 가운데 한문과 우리 고문에 능한 전문가를 선정해 비문 집필을 부탁했다. 부탁을 받은 당사자는 “매우 영광”이라며 흔쾌히 수락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번복했다. “영광이긴 한데 어렵다”는 것이었다.
사업회는 이후에도 몇 명의 한문학자에게 의뢰했지만 대부분 ‘심리적 중압감’과 ‘바쁜 일정’을 이유로 거절했다. 결국 3년여를 표류하던 비문 작성은 지난해 봄에야 완수할 수 있었다.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최완수 연구실장이 작성을 수락한 지 석 달 만에 결과물을 내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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