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철 한예종 연극원장이 본… 유럽연극상 대상 슈타인 작품
김윤철 원장
그가 수상 기념으로 가져온 공연은 독일의 베를리너 앙상블극단의 ‘깨진 항아리’였다. 항아리를 깬 범인을 잡기 위한 법정공방 과정에서 공권력의 추악함이 들통 난다는 독일 극작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1777∼1811)의 고전극이다. ‘모더니스트적인 육감을 가진 텍스트 건설자’라는 슈타인의 별명에 맞게 장면구성과 성격묘사의 세부적 처리가 압권이었다. 색욕과 물욕에 빠진 판사들의 위선이 산뜻하고 깔끔한 외형의 틀 안에서 어두운 유머로 낱낱이 벌거벗겨졌다.
17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제14회 유럽연극상 시상식에 참 석한 독일 연출가 페터 슈타인(오른쪽)과 그가 수상기념 공연으로 발틱하 우스 극장에서 선보인 독일 고전극 ‘깨진 항아리’. 유럽연극상 사무국 제공
새 개념 연극부문 수상자들의 면모도 여느 때와 상당히 다르면서도 다양했다. 포르투갈의 슬픈 현대사를 움직임의 연극으로 요약한 메리디오날 극단의 ‘1974’, 브라질 노예들의 리듬과 춤에서 영감을 받아 이민자들의 따돌림을 다룬 체코 무용단 동굴농장의 ‘극장’은 사회의식이 강한 공연이었다. 최근 서유럽에서 특히 사랑받고 한국에서도 공연한 바 있는 아이슬란드의 베스터포트 극단이 보여준 ‘파우스트’는 객석 위에 그물망을 쳐 놓고 배우들이 공중곡예를 하며 위대한 고전을 러브스토리로 패러디한 서커스연극이었다.
새 개념 연극상 수상작 가운데 가장 주목받은 공연은 핀란드 국립극단의 ‘미스터 버티고’였다. 서커스, 도발연극, 카바레연극, 마술연극, 재즈 콘서트 등 온갖 형식의 연극을 종합한 매우 육(肉)적인 연극이었다. 회전무대 위에 객석을 세워놓고, 그 주위에 여러 무대를 배치해 관객은 돌아가는 객석 위에서 주위에서 벌어지는 배우들의 빠른 움직임들을 추적하며 현실과 환상의 넘나듦을 체험할 수 있었다.
공감과 감동을 제공한 대상 수상자의 모더니티와 쾌락과 오락을 제공한 새 개념 연극상의 포스트모더니티가 충돌한 이번의 유럽연극상은 향후의 서구연극이 새롭고도 크게 변화할 것임을 예고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김윤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