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수석논설위원
청중 무관심으로 소멸 위기감
해외 유출 문화재의 귀환을 간절히 원했던 마음이 우리 전통에 대한 깊은 애정에서 나온 것이라면 처음부터 이 땅에 자리 잡고 있던 우리 문화유산에 대해서도 세심한 보호와 전승이 이뤄져야 정상이다. 하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전통문화는 낡고 뒤떨어진 것으로 여겨지면서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 지 오래다. 한국인의 정신적 유산이 농축돼 있는 한문 고전 가운데 현대 한국어로 번역이 꼭 필요한 것은 8000여 책에 이른다. 이 중에서 80%가 아직 미번역 상태다.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선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그대로 묻혀 버릴지 모른다. 특히 우리 전통문화에서 큰 축을 형성해온 국악은 소멸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위기를 맞고 있다.
조선시대 왕실에서 왕손들의 태교를 위해 국악을 활용했다는 옛 문헌을 토대로 한 ‘조선왕실 태교 콘서트’도 지난주 마련됐다. 숙명가야금연주단이 임신한 부부를 대상으로 가야금 연주를 들려주는 공연이었다.
국악계가 여러 아이디어를 짜내며 부활을 모색하고 있으나 국악의 미래는 밝지 않다. 젊은 세대는 국악에 무관심하다. 매일 저녁 수많은 공연이 전국의 무대에 올려지고 있으나 관객 모으기가 가장 힘든 분야가 국악이다. 판소리는 2003년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에 선정된 뒤에도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해마다 예술계 대학 졸업생이 3만 명 이상 배출되고 있으나 국악 분야는 800여 명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자꾸 줄어드는 추세다. 10년, 20년 뒤 국악이 이 땅에 존속하고 있을지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문화 정체성 위해 전통 진작해야
우리 전통을 이해하려면 국악을 알아야 한다. 조선조 왕들은 음악을 정치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바른 정치를 위해 예(禮)와 악(樂)이 중시됐다. 예는 도덕과 규범 등을 말하며 악은 음악을 뜻한다. 예는 천지(天地)의 질서를 이루게 하며 악은 천지의 화합을 이끌어낸다고 봤다. 즉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도덕 이외에 음악을 통해 화합과 조화를 이뤄내야 한다는 인식이었다. 음악은 교육 수단으로도 활용됐다. 음악은 인간의 성정(性情)을 변화시켜 인격을 완성한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선비의 방에는 거문고와 같은 악기가 반드시 갖춰져 있었다.
한국에서는 외국인 며느리가 늘어나면서 다문화를 강조하는 흐름이 두드러지는 반면에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있다. 전통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시대와 맞지 않는 일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다문화사회를 인정하고 대비하는 것과 전통문화의 전승은 별개의 일이다. 한국이 하나의 국가로서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전통문화를 지키는 일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
정조는 세종에 이어 국악을 진흥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군주로 꼽힌다. 그는 “누가 국악이 무너져서 흥기시킬 수 없다고 하였는가. 국악을 진작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흥기하지 않는 것이니, 흥기하는 것은 진작시키는 데 달려 있다”고 말했다. 국악의 소멸을 막기 위해 지금도 유효한 명언이 아닐 수 없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