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이장희 지음 392쪽·1만5800원·지식노마드
서울을 소개하는 책은 많지만 서울을 ‘그린’ 책은 많지 않다. 서울 곳곳을 스케치해 엮은 이 책이 반가운 이유다.
도시공학을 전공하고 미국 뉴욕에서 일러스트를 공부한 작가는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면서도 놓치기 쉬운 서울의 아름다움을 섬세한 필화로 담아냈다.
사진과 글로 구성된 기존의 기행서들과 달리 오직 스케치만으로 서울의 속살을 보여준다.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를 그린 그림에는 입구 앞에 걸인 두 명을 그려놓고 “(바구니에) 동전이 들어가면 바로 주머니로 옮겨 넣고 있었다”고 설명을 달았다.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중구 만리동에 있는 손기정기념공원 내 손기정 두상 조형 아래에는 달리는 몸을 그려놓았다. “(마라토너인데) 두상만 달랑 놓인 게 어색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작가는 이 책을 쓴 이유에 대해 “서울을 더 잘 알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림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스케치 노트와 대상물을 셀 수 없이 번갈아 보는 것은 그 외형을 알게 되는 최선의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의 말대로 ‘셀 수 없는’ 노력이 오롯이 담긴 그림들은 놀랄 만큼 세밀하다. 경복궁 근정전을 그린 그림에는 전체 건물의 모습은 물론이고 기단 난간에 세워진 사방신과 십이지신, 서수들 한 마리 한 마리를 따로 그렸다. 작가의 그림을 접하기 전 근정전 하월대 난간 한쪽에 해태 부부와 함께 작은 새끼 한 마리가 조각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독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명소 소개도 볼거리다. 1997년 3인조 소매치기단과 맞서다 숨진 액세서리 행상 이근석 씨의 추모비, 팍팍한 도심 풍경을 배경으로 200여 종의 동식물을 만끽할 수 있는 유네스코빌딩 옥상 생태공원, 서울대병원의 전신인 종로구 연건동 옛 대한의원 건물 뒤편 실험동물공양탑 등이다. 중구 명동 한복판에 선 이재명 의사 의거터 표지석과 윤선도 집터 표지석, 청계천 노변 건물 뒤의 조선시대 사당 성제묘는 일반인들의 눈을 피하듯 절묘하게 숨어 있다. “우리나라 문화재 은닉보존 기술은 단연 수준급”이라며 작가도 놀랄 정도다. 스케치를 위해 한자리에 오래 머물며 대상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살펴야 했던 작가이기에 찾아낼 수 있었던 보물들이다.
작업하는 동안 수많은 풍경이 사라지고 바뀌었다. “서울은 유기체”라는 작가는 식상한 기행서, 새로울 것 없는 사진과 건조한 역사 설명에 지친 독자라면 유기체 이곳 저곳을 섬세하게 살려 놓은 그의 ‘스케치북’ 속으로 빠져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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