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논설위원
우리 사회는 지역간 계층간 불평등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하지만 세대간 정의와 불평등에 대해서는 무지하거나 둔감한 편이다. 미국의 철학자 존 롤스는 저서 ‘정의론’에서 ‘동시대인과 마찬가지로 다른 세대에 속하는 사람들도 서로 간에 책무가 있다’고 설파했다. 각 세대는 문화와 문명의 장점들을 보존하고, 국부(國富)와 정의로운 제도를 유지하고, 당대(當代)에 적절한 양의 실질적인 자산을 축적해 후속 세대에 넘겨줄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미래세대가 필요한 것을 충족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현 세대가 필요한 것을 충족시키는 것’이라는 의미의 ‘지속가능한 개발’도 같은 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아들 손자 빚으로 부담하는 복지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미국에서 20년 안에 65세 이상 유권자가 17%에서 26%로 증가하면서 실버 민주주의가 도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인들은 투표율이 높아 일반 유권자보다 선거에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미국의 노인들은 연금과 메디케어(65세 이상 고령자를 위한 의료보험) 혜택을 더 많이 주겠다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경향을 드러낸다. 중년들도 자기들이 곧 늙으리라는 예상에서 투표 성향이 비슷하다. 이른바 실버 민주주의에서는 국가가 미래와 관련된 교육이나 보육보다는 표를 많이 가진 노인 복지에 더 많은 재정을 투입한다. 국가가 마치 이익금을 대부분 퇴직 사원들에게 나눠주는회사처럼 되는 것이다.
미국 뉴욕타임스 1월 27일자 기사에 따르면 일본에서 오늘 태어난 아이는 오늘 은퇴하는 사람보다 연금 건강보험과 기타 정부 지출에서 일생 동안 약 1억 엔을 덜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의 베이비 부머인 단카이(團塊) 세대(1947∼1949년생)는 정규직 지위와 종신고용을 즐겼다. 그러나 지금의 일본은 15∼24세의 45%가 비정규직 임시직으로 정규직 봉급의 절반 정도를 받는다. 이 수치가 1988년에는 17.2%에 불과했다. 일본은 2055년이면 인구의 45%가 65세 이상인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게 된다. 일본의 젊은 세대는 시원찮은 일자리를 갖고 뼈 빠지게 벌어 노인 세대의 연금과 건강보험을 충당해야 할 판이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계층간 불평등 의식을 자극하며 공짜 쿠폰 나눠주기 식의 복지 정책으로 표 얻기에 바쁘다. 국가의 미래상을 설계하는 대신에 눈앞의 이익을 좇는 유권자에게 영합하는 정치인들이 많아지면 결국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같은 국가부도 위기에 몰릴 것이다. 현세대가 감당을 못하는 천문학적인 국가부채는 아들 세대 손자 세대로 내려가게 된다. 저출산으로 인구가 적은 젊은 세대는 앞 세대가 물려준 국가부채를 짊어지고 수명이 길어진 은퇴 노인들의 뒷바라지까지 하자면 허리가 휠 수밖에 없다. 연금, 건강보험, 공짜점심, 무상복지 시리즈와 재정적자도 세대간 정의의 차원에서 긴 안목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후속 세대에 자산 넘겨줄 책무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