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윤희 씨, 각종 판본 역사 되짚은 ‘…지혜를 담은 그릇’ 펴내
경남 합천군 해인사에 있는 재조대장경(팔만대장경). 동아일보 자료 사진
사단법인 고려대장경연구소 소장을 지낸 오윤희 씨(53)가 대장경의 역사를 짚은 책 ‘대장경, 천년의 지혜를 담은 그릇’(불광출판사)을 냈다. 오 씨는 2005년 소장을 맡아 지난해 말 그만두기까지 ‘한일 공동 고려초조대장경 디지털화 사업’을 완료했다. 이 책에서 그는 “자랑할 건 자랑하되 사실을 과장하거나 왜곡해선 안 된다”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그는 우선 고려대장경이 ‘오리지널’이 아니라는 사실을 들었다. 초조대장경은 송나라의 개보(開寶)대장경을 베낀 것이고, 해인사에 보관된 재조(再雕)대장경은 초조대장경을 베낀 것이다. 따라서 고려대장경을 가리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대장경’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오 씨는 설명했다.
‘고려대장경에는 오자가 없다’는 얘기도 사실과 다르다고 오 씨는 말했다. 정확도가 높기는 하지만 적잖은 오자가 있다는 설명이다. 고려대장경 안에는 교정에 대한 기록인 ‘교정별록’이 포함돼 있는데 그 책에서조차 오자가 여럿 발견됐다.
오 씨는 “이 같은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서 고려대장경의 가치가 절하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고려대장경만의 자랑거리가 많기 때문이다. 그는 고려대장경의 우수한 점으로 ‘교정’을 꼽았다. 재조대장경의 경우 5200만 글자, 1500여 종의 문헌을 교정했다. 오 씨는 “앞선 대장경을 옮기면서 꼼꼼한 교정과 편집을 거침으로써 가장 정확한 대장경으로 탄생했다. 글자 모양 같은 데 집착하다 보면 교정의 위대함을 놓치게 된다”고 말했다.
오 씨는 고려대장경을 아시아인, 더 나아가 세계인의 공동 창작물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도에서 시작해 여러 나라와 민족이 번역했고, 새로운 문헌을 추가해 가면서 유통시킨 ‘물건’이지 한민족이 혼자 창조한 게 아니라는 뜻에서다. 그는 “우리가 고려대장경에 관해 자랑할 수 있는 건 고려인들이 받은 선물을 잘 포장해 세상에 다시 선물했다는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고려대장경 1000년’을 기념하는 것은 아시아 전체의 대장경 연구에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시아의 지식문화를 함께 기념하고 얘기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는 “국제 학술대회도 열리는데 손님 모셔놓고 우리 자랑만 하면 안 된다. 민족주의적 색깔을 빼야 공동의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