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과 호롱불이 있는 마을-한희원 그림 제공 포털아트
다음 날 아침 마을은 다시 소란스러워졌습니다. 누군가가 밤사이에 전날과 똑같이 ‘최○미’라는 이름을 곳곳에 써두고 갔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본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예사로운 일이 아닌 것 같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개중에는 극도로 분개하며 이런 놈은 기필코 잡아 콩밥을 먹여야 한다며 당장 경찰에 신고하자고 나서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로 경찰에 신고하는 건 지나치다는 신중론이 많아 다시 한 번 낙서를 지우고 기다려 보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마을 사람의 노고를 비웃듯 벽 낙서는 고스란히 되살아나 있었습니다. 결국 주민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고 사건이 접수되어 본격적으로 낙서범 검거 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마을 사람은 낙서를 지우고 담당순경은 잠복근무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마침내 담당순경은 문제의 범인을 검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낙서범은 어이없게도 여덟 살 된 남자아이였습니다.
어린 낙서범은 한없이 각박하고 삭막해진 세상에 커다란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패륜의 세태에 진흙 속에서 고결하게 피어난 한 송이 연꽃을 발견한 기분입니다. 때 묻지 않은 동심, 낙서하는 아이의 마음에서 우리는 맹자의 측은지심(惻隱之心)을 다시 발견합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남을 불쌍히 여길 줄 아는 선한 마음을 타고났다고 보아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하였습니다.
‘책임(responsibility)’이라는 영어 단어는 ‘response(반응)+ability(할 수 있음)’의 조합입니다. 반응할 수 있음, 즉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능력이 책임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는 너무 무책임한 인생을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타인의 고통에 반응하는 게 아니라 외면하고 도외시하는 삶, 나만 잘살고자 하는 이기의 극점에서 스스로 고통받고 있는지 모릅니다. 어린 낙서범이 우리에게 일깨우는 것, 그것은 곧 나와 남을 구분하지 않는 진정한 사랑입니다.
박상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