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게 무슨 창피람. 처음엔 구단 직원인 줄 알았다. 곱상한 인상에 조용한 성격, 호리호리한 몸매. 기자와 같은 180cm이니 커보이지도 않았다. “아니, 저 친구 몰라? 그 유명한 송진우야.” 옆에서 한 선배가 거들었다. ‘송진우라고? 송진우 선생은 들어봤지만….’ 이상군 한희민은 알아도 송진우는 기자의 머릿속에 없었다. 고교 시절 부산 구덕야구장을 들락거렸고, 대학 저학년 때는 기숙사에서 채널 쟁탈전을 벌인 기자였다. 하지만 두세 해 후배부터 1980년대 말 고교와 대학을 다닌 선수들에 대해선 마치 끊어진 필름처럼 백짓장이었으니.
기자는 386세대의 서자(庶子)다. 굳이 서자라고 투정을 부린 것은 386세대의 의미가 아주 배타적이라는 걸 최근에야 알게 됐기 때문이다. 백과사전엔 19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30대(이젠 40대, 50대가 됐다)로서, 학생운동과 민주화투쟁을 한 세대라고 돼 있다. 더 좁게는 김대중(DJ) 정부가 출범하면서 90년대 중후반 정치권에 대거 진출한 386세대의 적자들을 한정하는 말이다. 기자는 수많은 불면의 밤과 가슴앓이는 겪었어도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족적을 남긴 게 없다. 학교에서 잘리고 낙향해 부모님 가슴에 못질을 한 뻔뻔함은 있었어도 김예슬 양처럼 스스로 학교를 그만둘 용기는 없었다.
386세대의 적자들은 DJ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변절했다는 비난을 들었다. 맞서야 할 독재 세력이 사라지면서 방향성을 잃었을 수 있다. 권력의 단맛에 길들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386세대는 여전히 그 어느 기득권 세대보다 건전하다고 기자는 믿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고교야구의 마지막 황금기에 고교를 다니고, 프로야구가 출범할 때 대학을 다닌 선후배들. 태생적으로 스포츠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집단이다.
기자는 우연히 체육기자가 된 뒤 뭉텅이로 잘려나간 1980년대 중후반의 필름을 잇는다고 뒤늦게 고생을 했다. 386세대들이여, 하찮은 것이라고 깎아내리며 그동안 애써 외면했던 스포츠에도 다시 관심을 기울여 보시라. 한국 사회를 바로 세울 새로운 방향이 보일 것이다.
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