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는 먼저 예비협상대상자인 현대차그룹과 언론의 의혹 제기에 쉽게 흔들리면서 자신이 세운 원칙을 번복하는 등 일관된 태도를 보이지 못한 채권단을 나무랐다. 이어 현대그룹의 책임을 거론했다. 프랑스 나티시스은행 예치금 1조2000억 원에 대해 신빙성 있는 자료를 당당하게 제출하지 못하고 여러 차례 불충분한 자료를 제출했다는 것이다. 마지막은 현대자동차그룹이었다. 예비협상대상자로서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결과에 지속적으로 의혹을 제기해 입찰 절차에 많은 혼란을 야기했다고 꾸짖었다. 결국 ‘채권단은 줏대 없이 행동했고, 현대그룹은 불신을 자초했으며, 현대차그룹은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되지 못하자 훼방을 놓았다’며 세 주인공의 연기를 싸잡아 혹평한 셈이다.
재판부는 “앞으로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업들의 대형 인수합병(M&A)이 있을 경우 채권단, 현대그룹, 현대차그룹처럼 행동하면 안 된다는 소중한 교훈을 주었다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글을 맺었다.
금융당국도 재판부의 질타에 부끄러워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업의 매각인데도 ‘시장’을 강조하며 뒷짐만 지고 있다가 2개월간 소모적 논란을 방기했다는 지적이 나오자 뒤늦게 “승자의 저주를 막을 M&A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왕 약속했으니 서둘러 이행했으면 한다. 여기에 더해 채권금융기관도 대형 기업의 매각 절차에 허점이 없는지 점검해 개선책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현대건설 매각 사례는 앞으로 진행될 국내 기업의 M&A에서 두고두고 ‘나쁜 참고서’로 남게 될 것이다.
차지완 경제부 c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