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 감독, 스포츠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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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제골 내주고 찾아온 한국팀 최대 위기
선수들 슬기롭게 대처 마침내 원정 16강
유쾌한 결실…세계무대 자신감 큰 수확
2007년 12월, 허정무 감독은 중책을 맡았다. 외국인 감독이 이어왔던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2000년 거스 히딩크 감독부터 시작된 8년간의 외국인 사령탑에 종지부를 찍었다.
결과도 좋았다. 그는 2010남아공월드컵에서 한국축구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루어냈다. 1승1무1패로 아르헨티나에 이어 조 2위로 16강에 오른 한국은 우루과이에 패해 8강 진출에 실패했다. 국내 감독도 월드컵에서 성적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허 감독으로부터 월드컵 뒷얘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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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강보다 한국축구의 나갈 길 제시
허 감독은 원정 16강 진출보다 월드컵을 통해 한국축구가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는 점에 더 큰 의미를 뒀다. 월드컵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준비를 해야 세계무대에서 통할 수 있는가’에 대해 어느 정도 해답을 찾았다고 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억압된 축구를 했던 게 사실이다. 학원축구에서 비롯된 경직된 훈련과 지도방법이 창의적인 플레이를 저해했다. 그러나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는 유쾌한 도전을 통해 즐기면서 맘껏 플레이했다. 이를 통해 성적이 났다는 게 더 큰 의미가 있다.”
허 감독은 마무리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월드컵 4경기를 통해 한국축구가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마무리의 정확도가 더 발전해야한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
“우리가 경기는 잘 했지만 결정을 해줘야 할 때 결정짓지 못하면서 흐름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경기가 아르헨티나전과 우루과이전이다. 세계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반드시 결정력을 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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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느꼈던 나이지리아전 선제골
월드컵 치르면서 한국은 그리스 전 2-0의 완승을 거두며 순조로운 출발을 했다.
“그리스전을 앞두고 편하게 해주려고 일부러 미팅을 안 했다. 그런데 선수들이 따로 모여 스스로 전술 미팅을 하면서 경기를 준비했다. 그게 승리의 밑거름이 됐다.”
출발은 순조로웠으나 아르헨티나에 일격을 당했다. 1-4의 충격적인 패배. 당시는 선수 뿐 아니라 감독들의 신경전도 뜨거웠다. 아르헨티나 마라도나 감독이 한국 벤치를 향해 도발을 했고, 허 감독도 맞불을 놓았다.
“마라도나가 일종의 심리전을 펼쳤다. 그래서 대응을 좀 강하게 했다. 벤치 기 싸움에서 밀리고 싶지 않았다. 마라도나 감독이 이끄는 아르헨티나와 다시 한번 붙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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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을 치르면서 가장 위기였다. 골을 허용한 뒤 나이지리아가 우리 골대를 한 번 맞췄다. 그게 골이 됐다면 사실상 16강은 힘들었다. 선수들이 슬기롭게 위기를 잘 넘겨줬다.”
한국은 1골을 먼저 내주고 2-1로 경기를 뒤집는 힘을 과시했다. 결국 2-2 무승부를 거두긴 했지만 한국은 16강에 안착했다.
○8강 상대 가나도 분석
허 감독은 8강전도 준비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우루과이전에서 승리할 경우를 대비해 다음 경기 상대가 될 수 있는 팀의 경기를 분석했다. 그러나 우루과이전에서 패하면서 그 준비는 수포로 돌아갔다.
“8강전에서 만날 가능성이 있었던 가나와 미국의 조별리그 경기 비디오를 봤다. 우루과이가 강팀이긴 했지만 해 볼만 했다. 토너먼트 대회 특성상 우리에게도 기회는 있었다.”
그러나 우루과이 전에서 한국은 경기종료 10분여를 남기고 수아레스에게 결승골을 내줘 1-2로 패했다. 8강 진출은 좌절됐다.
“우루과이전에서 밀리긴 했지만 득점 찬스가 많았다. 지성이가 좋은 패스를 2번 연결했는데 모두 골이 되지 않았다. 둘 중에 하나만 들어갔으면 승부는 몰랐다.”
우루과이전을 떠올리면서 허 감독이 또 하나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분은 김보경과 이승렬이다. 조커로 고려했지만 투입하지 못했다. ‘그들이 나갔더라면 어떻게 상황이 바뀌었을까’라는 궁금증이 남아있다. “김보경과 이승렬은 충분히 경기를 뛸 능력이 있다. 그런데 내가 과감하게 그들을 기용하지 못했다. 생각은 있었지만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결과론이지만 그들을 내보냈더라면 상황이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다.”
최용석 기자 gt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