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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기자의 사람 이야기]지난주 전역한 천안함 합동조사단장 “윤종성” 예비역 소장

입력 | 2010-12-27 03:00:00

“이렇게 근거없는 불신 심해서는 제2 천안함-연평도 못막는다”




천안함 폭침사건의 군 합동조사단장을 맡았던 윤종성 소장은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는 일에 들인 시간과 노력의 비용보다 막무가내식 반론에 대응하는 일에 들인 시간 노력 비용이 여덟 배, 아홉 배는 된다”며 “적어도 사실만큼은 인정하고 받아들인 뒤 주의 주장을 펼쳐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불신 때문에 치러야 하는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다”며 안타까워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3월 26일 금요일 저녁 윤종성 국방부 조사본부장(53·소장)은 헌병 선배들과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오후 10시 반 갑자기 휴대전화가 울렸다. 상황장교였다. 서해에서 우리 배가 침몰했다는 보고였다. 헌병의 최고지위인 헌병감까지 올라 동해안 23사단 총기 피탈 사건, 22사단 일반전초(GOP) 수류탄 절취 사건, 2군사령관 인터넷 모함 사건 등 군 대형 사건을 해결해 오며 군 내 최고 수사전문가로 인정받던 그였다. “뭔가 심상치 않다”는 직감이 왔다. 서둘러 자리를 파하고 복귀했다. 국방부 장관(김태영)은 이미 청와대에 있었다. 예상대로 단순 사건사고가 아니었다. 큰일이 터진 것이다.

을 꼬박 새우며 조사본부장 취임 당시 만들어놓은 과학수사 30개 매뉴얼을 점검했다. 영상사진팀, 사체검안팀, 증거물 수집 및 분석팀을 모두 대기시켰다.

이튿날 장관은 상황 파악 임무를 일단 국방부 전비태세검열실에 맡겼다. 그가 책임지고 있는 조사본부도 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사건 발생 시간부터 명확히 해야 했고 배가 왜 백령도 가까이 갔는지, 함 내 기강 문제는 없었는지, 함장이 사건에 대해 함구령을 내렸다는데 맞는지, 배가 낡아서 좌초했다는데 건조나 장비 상태는 어땠는지 각종 의문이 쏟아지고 있었다. 마침내 사건 발생 닷새 뒤인 3월 31일 민군합동조사단이 꾸려졌고 윤 소장은 조사단 산하 과학수사분과장을 맡게 된다.

“4월 2일 백령도 첫 현장 답사를 했다. 심정적으로 북의 소행이라는 확신이 들었지만 증거가 없으니 말할 수가 없었다. 사건 초기에는 어뢰인지 기뢰인지 논란이 있었으므로 백령도 인근에 과거에 묻었다는 기뢰 실태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얼마 뒤 합류한 미국 스웨덴 호주 영국 등의 조사단원들로 구성된 국제조사팀은 선체 손상 정도, 버블 등을 토대로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 어뢰 공격에 의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자신들은 이런 유의 경험이 없다며 (어뢰를) 찾기는 힘들 것이라고 했다.”

당시만 해도 학자 언론인 정치권 모두 어뢰와 기뢰를 구분하지 못하고 무조건 의혹을 쏟아내던 때였다. 육군이자 헌병 장군이었던 윤 소장도 수사 분야만 맡다 보니 무기체계, 그중에서도 수중무기체계에 대해서는 비전문가였다. 공부가 필요했다. 국방과학연구소 어뢰담당자 이재명 박사 등 광범위한 전문가 집단으로부터 학습을 해가며 수사도 함께 진행해야 했다.

KAIST 교수이며 미 해군대학원에서 수중무기에 대해 20년 이상 강의를 해온 신영식 박사의 도움이 컸다. 신 박사는 육상폭발, 수중폭발, 접촉과 비접촉 폭발을 확실히 구분 지어 설명하면서 버블효과와 환자 상태를 면밀히 진단해 어뢰라는 결론을 내렸고 윤 소장도 점점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윤 소장은 2003년 포항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북한 시험용 어뢰를 눈으로 확인해본 뒤 크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커서 ‘어쩌면 찾을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끌어올려야 하나.

잠수부를 동원했지만 허사였다.

“수심 47m, 시계 30cm, 수중온도 3도로 앞이 안 보이는 얼음물에 들어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10분 이상 있을 수 없었다. 수중로봇도 무용지물이었다. 이 와중에 한주호 준위가 순직했고 금양호 선원들이 실종되면서 희망은 점점 절망으로 바뀌었다.”

그렇다고 손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수시로 아이디어 회의를 했다. 먼저 대형 자석을 써보자는 안이 나왔다. 하지만 어뢰가 대부분 자석에 달라붙지 않는 알루미늄이어서 부적절하다는 결론이 났다. 바다 바닥을 퍼내는 준설도 생각했지만 준설선(船)이 부산에 있어 백령도까지 오는 데 한 달이 걸린다고 했다. 스웨덴 조사팀에서는 아예 바다 밑을 얼리자는 의견을 냈다. 즉, 어뢰 파편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해역의 바다 밑에 30cm 높이로 냉동장치가 장착된 관들을 덮어 바다 밑을 얼려 어뢰를 찾자는 아이디어였지만 비용이 조 단위였다.

“그러던 어느 날 공군 조사단장인 양승주 공군 대령이 동해 서해로 떨어진 전투기 잔해를 수거할 때 쌍끌이 어선을 이용했다고 말했다. 귀가 번쩍 뜨였다. 마침 공군은 수거작업을 할 때마다 인연을 맺어 온 제작사(부산 대평수산)와도 잘 알고 있었다. 공군작전사령부 박준흥 안전실장, 대평수산 김철안 사장에게 물어보니 2006년 동해안 수심 372m, 2007년 서해안 수심 45m에서 전투기 잔해를 끌어올린 경험을 살리면 어뢰를 끌어올릴 수도 있다고 했다.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처럼 어뢰 수거작업에는 평소 맺어왔던 민(民)과의 네트워크, 군과 민의 헌신이 결정적이었다. 제작사 직원들은 밤새 작업해 일주일 만에 준비를 끝냈고 선원들도 평소에는 하루 두 번 바다에 나가는 작업을 여덟 번으로 늘렸다. 하지만 바다를 무조건 훑는다고 되는 일은 아니었다. 추진동력장치가 어디로 어떻게 날아갔는지 추정해 폭발좌표를 계산해 훑을 지점을 일일이 찍어야 했다. 마침내 배를 띄운 지 닷새 만인 5월 15일 어뢰가 끌어올려졌다.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 매달린 쾌거였다.

윤 소장은 “이제 결정적 증거가 나왔으니 모두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큰 착각이었다”고 회고했다. 6월 말 과학수사분과장에서 합동조사단장으로 진급해 결과보고서를 내는 과정에서 그는 또 다른 전쟁을 치러야 했다. 바깥의 적이 아닌 우리 내부의 이념전쟁이었다.

“그전만 해도 군(軍)이라는 공간 안에서 같은 생각을 공유한 사람들만 만나다 보니 우리 사회의 이념 갈등을 체험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한국 사회 이념 갈등의 골이 이렇게 깊은 것에 새삼 놀랐다.”

러시아 조사단의 어정쩡한 태도는 더욱 기가 막혔다. 조사에 참여한 러시아 측 대령 3명은 조사단과 24시간 같이 생활하면서 생존자 면담은 물론이고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어뢰설계도까지 보고 돌아갔다. 그러면서 “한국군에 경의를 표한다”고까지 했다. 그런데 나중에 가서 엉뚱한 소리를 해댔다. 국제질서란 것도 다분히 국가 이익과 전략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실감한 사건이었다.

7월에는 기뢰에 의한 침몰을 주장하는 2쪽짜리 ‘러시아보고서’라는 게 미 국무부와 한국 외교통상부에까지 흘러 들어갔는데 러시아 정부는 ‘허위문서’라고 공식 확인했다. 사실을 왜곡하는 세력들이 이렇게 교묘하고 조직적이기까지 하다니 새삼 놀란 일이었다.

소장은 “러시아 조사단 사건보다도 군을 더 힘 빠지게 한 것은 국내 이념 갈등이었다”면서 “사실을 우선 받아들인 뒤 원인과 대책을 토론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견은 당연한 것이겠지만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조사 결과를 놓고 설득작업을 해야 할 때마다 ‘이건 아닌데’ 하는 순간이 많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장에서 체험한 진보와 보수 쪽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들에 대한 느낌을 털어놓았다.

“이른바 종북 좌파는 막무가내였고 끈질겼으며 집요했다. 그 과정에서 한때 이슈가 되었던 어뢰 추진동력장치 구멍에 끼여 있던 조개껍데기 조각을 발견하는 등 조사단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사항을 찾아낸 점은 인정해줄 만하다. 또 그들은 신속하고 빨랐다. 자료가 공개될 때마다 발 빠르게 반박 자료를 언론에 배포했다. 여기에 점심 한 끼라도 상대방에게 신세지지 않으려고 하는 태도도 인상적이었다. 국방부에서 토론회를 마치고 식사를 제공하려 했지만 한사코 도시락을 준비해 먹겠다면서 거절했다. 도덕성을 지키려는 자세만큼은 신선해 보였다.”

이어 윤 소장은 “하지만 그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목적을 위해 주장을 무조건 강변하려는 태도와 지엽적인 것을 전체적인 것으로 확대 해석해 한 방향으로만 몰고 가려는 태도,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누릴 것은 다 누리고 살면서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태도로 일관했다”고 덧붙였다.

세칭 ‘보수’라는 사람들도 문제였다. 그의 쓴소리가 이어졌다.

“말이 앞서고 행동이 없었다. 사실과 다른 내용이 인터넷에 돌아다닐 때도 입장을 명확히 밝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KAIST 송태호 박사는 달랐다. 열역학을 전공한 학자로서 재미학자 이승헌 교수 등이 하도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하자 그 무더운 여름에 아무 대가도 따르지 않는 일에 2개월을 혼자 매달려 연구를 했다. 그 결과 그 말 많던 ‘1’번 글씨가 어뢰에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과학적으로 증명해냈다. 존경할 만한 학자였다.

“하지만 대다수 보수는 너무 무력하고 안이했다. 좌파들이 ‘천안함을 묻는다’ ‘봉인된 천안함’ ‘과학의 양심 천안함’ 등 책을 세 권이나 내고 비디오까지 만들어 돌렸지만 보수는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 누구 말대로 우파는 돈을 주어야 움직이지만 좌파는 제 돈 내고 움직인다는 말을 실감했다고나 할까.”

기자가 이 대목에서 ‘생각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묻자 그는 “최소한 팩트(fact)는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닌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를 왜곡하고 무시하려는 견해는 다양성이 아니라 소모적 갈등일 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어떻게 해야 소모적 이념갈등을 극복할 수 있겠느냐”고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서로 인정할 것은 인정해주는 것이 옳은 것 같다. 이 땅의 ‘산업화 세력’은 경제성장의 초석을 다졌고 ‘민주화 세력’은 민주주의의 초석을 다진 일에 모두 충실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계승할 것은 계승하고 보완할 것은 보완하는 지혜의 눈을 젊은이들에게 물려줘야 하지 않겠는가.”

의 말이 이어졌다. “천안함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데 10 내지 20의 시간, 노력, 비용이 들었다면 막무가내식 반론을 해명하는 데는 무려 80, 90이 들었다. 갈등과 불신 때문에 치러야 하는 국가 비용이 이처럼 상상 이상이라는 것을 나도 이번 일을 겪으면서 알게 됐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써야 할 자원이 쓸데없는 곳에 쓰이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몸과 마음이 지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는 22일 임기 만료로 30년간 몸담은 군문을 떠났다. 본래 퇴역 후 한가로운 생활을 계획했지만 이번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나부터라도’ 하는 마음에 조사 과정을 담은 책을 쓰고 있다. 내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에 적을 두고 공부를 더 할 계획이다.

윤 소장은 “북의 연평도 도발로 드러났듯 천안함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했다. 내년에도 대한민국 앞에는 많은 도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우려일 것이다.

올해는 예상치 못했던 북의 도발에 대처하는 것도 힘든 한 해였지만 그걸로 찢어진 우리 내부를 보는 일로 배는 더 힘든 한 해였다. 그를 만난 날은 성탄절(25일) 오전이었다.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를 주고받은 하루였다. 적어도 성탄 하루만큼은 ‘하나 된 언어’가 가능했듯 내년에는 적어도 ‘사실’ 앞에서만큼은 하나 된 언어를 나누는 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윤종성 소장::


―1977∼1981년 육군사관학교 졸업
―1997∼2000년 수도방위사령부 33경호대장(중령)
―2000∼2003년 대통령경호실장 보좌관(중령)
―2003∼2004년 5군단 헌병대장(대령)
―2004∼2006년 육군본부 중앙수사단장(대령)
―2006∼2008년 육군 헌병 병과장(옛 헌병감) 겸 육군 수사단장(준장)
―2008∼2010년 국방부조사본부장(소장)
―2010년 12월 22일 전역
―1996∼1999년 동국대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2003∼2008년 명지대 정치외교학 박사
저서: ‘장군의 리더쉽 다이어리’(2009년), ‘박정희 리더쉽 스토리’(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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