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예산 전쟁’ 이후]한나라 고흥길 정책위의장 예산누락 책임지고 사퇴

입력 | 2010-12-13 03:00:00

“여론 심상찮다” 몸낮춘 여권… 오늘은 尹재정 사과하기로




물러나는 고흥길 한나라당 고흥길 정책위의장(왼쪽)이 12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새해 예산안에 일부가 반영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며 정책위의장직 사퇴를 밝힌 뒤 자리를 뜨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1박 4일’ 순방을 마친 이명박 대통령이 11일 오전 귀국하던 날 한나라당 수뇌부는 일제히 청와대에 들어갔다. 주말인데도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 김무성 원내대표, 고흥길 정책위의장, 원희룡 사무총장 등 핵심 당직자가 참석했다. 청와대에선 임태희 대통령실장이 배석했다. 이 대통령을 비롯한 당청 수뇌부는 이날 청와대에서 비공개 만찬을 하며 예산안 처리 후폭풍 대책을 집중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이 주재한 당청 수뇌부 회동이 이처럼 긴박하게 열린 것은 이례적이다. 한나라당이 새해 예산안을 강행 처리하면서 불교계 숙원사업인 템플스테이 예산을 누락시켜 불교계가 거세게 반발하는 등 예산처리 후폭풍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 아침에 귀국한 MB, 저녁에 여당 수뇌부 회동

12일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전날 청와대 만찬에서 예산안 강행 처리와 관련한 당내외 상황을 당 지도부로부터 보고받았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예산안이 정기국회 회기 내에 통과돼 다행이지만 불교계의 템플스테이 예산 일부 누락 등의 문제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산안 처리 후폭풍과 관련해 책임론에 휩싸인 고 정책위의장에게는 “그동안 수고하셨다”고 말했다고 한다.

고 정책위의장의 사퇴는 이 대통령과의 만찬 직후 안 대표 등이 임 실장과 정진석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등과 함께 별도로 회동을 한 뒤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고 정책위의장은 “내가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고 사퇴 의사를 밝혔고, 안 대표 등은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그 같은 고육책에 공감했다는 것이다.

안 대표 등은 청와대 회동을 통해 고 정책위의장의 사퇴와 함께 당에서 약속해온 핵심 예산 일부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데 대한 책임을 물어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의 사과 요구를 관철시켰다고 한다. 여권 관계자는 “윤 장관은 예산 관련 차관과 함께 13일 한나라당 당사를 방문해 유감을 표명할 예정”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 고 의장 사퇴 앞세워 사태 조기 진화?

거리에 나선 손학규 민주당 손학규 대표(오른쪽)가 12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농성장에서 한나라당의 새해 예산안 강행 처리를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고 정책위의장의 사퇴는 안 대표가 제기한 문책론이 당 정책위원회를 겨냥한 것과 무관치 않다. 당 일각에선 예산안 처리 이후 불교계 등의 불만을 잠재울 ‘제물 찾기’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안 대표는 예산안 처리 다음 날인 9일 최고위원회의 비공개회의에서 템플스테이 예산 증액이 당초 불교계에 약속한 것과 달리 이뤄지지 않은 문제 등에 대해 정책위원회와 정책위 산하 당 예산결산위원회 실무진의 문책을 거론했다고 한다. 당 예결위의 보고를 받아 국회 예산결산특위 위원장인 이주영 의원 등에게 당의 요구를 전달하고 조율할 책임이 정책위에 있다고 본 것이다.

여권이 고 정책위의장의 사퇴 카드를 던지며 과거와 달리 발 빠른 행동에 나선 것은 예산안 강행 처리에 대한 야당의 반발과 여론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고 정책위의장이 12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사퇴 간담회를 한 뒤 곧바로 포항이 지역구인 이병석 의원이 포항 지역과 관련된 내년 예산이 늘어난 게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의 영향력 때문이라는 이른바 ‘형님 예산’에 대한 반박성 기자간담회를 자청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의 한 고위 관계자는 “서둘러 이 문제를 수습해야 내년부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헌 등 새로운 정치 현안에 집중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