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전형적인 상인형 리더다. 경제 운용이나 ‘정상적 국가’와의 외교에서는 이런 리더십이 먹혔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지난해 1분기부터 올해 3분기까지 1년 9개월 연속 전분기 대비 플러스 성장을 한 유일한 나라다. 지난달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 의장국 역할도 무난히 수행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G20 회의 직후 이 대통령 인터뷰 기사에서 “선수(先手), 포석(布石), 사전 조율이라는 외교의 요체를 이명박 외교에서 느낀다. 아마 그것이 지금 일본 외교에 가장 필요한 요소일지 모른다”고 썼다.
그러나 세계 최악의 저질 폭압정권인 김정일 집단을 다루는 방식은 달라야 했다. 북한의 천안함 공격에 이은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한 우리의 무기력한 대응은 상인형 리더십의 한계를 뚜렷이 보여줬다. 경제와 외교에서 점수를 따더라도 적의 무력도발에 속수무책으로 깨지는 국가지도자를 국민이 믿고 따르긴 어렵다.
대통령의 우유부단함은 좌파정권 10년을 거치면서 안보 불감증이 위험 수위를 넘어선 대한민국의 현주소와도 무관하지 않다. 천안함 비극을 겪었지만 적잖은 국민이 북한의 만행에 분노하기는커녕 가짜 평화세력이 부르짖은 ‘전쟁이냐, 평화냐’라는 선동에 넘어갔다. 주민을 먹여 살리는 능력은 빵점이지만 독재 권력을 유지하고 한국 내 분열을 부추기는 정치공학에는 능숙한 북한이 우리를 우습게 보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우리 국민 중 누가 전쟁을 바라겠는가. 그렇지만 잔인하고 교활한 적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면서 원하는 것을 주어 달래려 하면 더 큰 재앙을 부른다. 미국 작가 로버트 그린은 ‘전쟁의 기술’에서 “늑대 앞에서 평화주의자가 되는 것은 끝없는 비극을 낳을 뿐”이라고 갈파했다. 한국의 10년 좌파정권은 60억 달러, 우리 돈으로 6조 원 이상을 북한 정권에 퍼주었지만 돌아온 것은 한층 노골화된 대남 도발과 협박이었다. 햇볕정책이 벗긴 것은 북의 폐쇄적 체제가 아니라 우리 국민의 안보 외투였다.
사악한 전사형 리더인 김정일 집단과 맞서는 대한민국의 지도자는 상인형 리더십을 잠시 내려놓는 게 낫다. 모든 측면에서 저들보다 우월한 대한민국을 지킨다는 대의(大義)에 앞장서 행동으로 헌신하면서 국민에게도 동참을 요구해야 한다. 그린은 “당신은 항상 칼날을 날카롭게 갈아두어야 한다. 당신이 본성적으로 상점 점원이라도…”라는 경구(警句)를 남겼다. 대통령을 비롯한 지도층 인사들이 새겨들어야 할 충고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