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의미◇김행숙 지음 152쪽·8000원·민음사
김행숙 씨의 새 시집은 포옹에 대한 기이한 묘사로 시작한다. 시인에게 포옹이란 ‘볼 수 없는 것이 될 때까지 가까이’ 하는 것이다. 시적 화자는 포옹으로 인해 ‘너’는 볼 수 없는 것이 됐다면서 ‘너는 검정에 매우 가깝습니다’라고 말한다. 포옹하는 ‘너’는 ‘나’를 어떻게 보느냐고, ‘나는 검정입니까?’라고 화자는 묻는다. 이 정직한 질문은 그러나 시에서 발화될 때 낯설게 읽힌다. 시인은 이렇게 당연한 듯 보이는 구절들을 엮어서 전혀 다른 문양의 직물로 만들어낸다.
김행숙 씨는 2000년대 시단에 충격을 준 미래파 시인들의 예언자 역할을 했던 시인이다. 세 번째 시집 ‘타인의 의미’에서 그는 언어들이 뜨겁게 충돌하는 시의 공간을 펼쳐 보인다. ‘어느 저녁/타인의 살갗에서/모래 한 줌을 쥐고 한없이 너의 손가락이 길어질 때//모래 한 줌이 흩어지는 동안/나는 살갗이 따가워.//서 있는 얼굴이/앉을 때/누울 때/구김살 속에서 타인의 살갗이 일어나는 순간에.’(‘타인의 의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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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